신라 8대 임금 아달라 왕 때의 일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 위에 홀연히 바위 하나가 나타나자,
연오랑은 이것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는 바위를 타고 온 이 사람을 왕으로 모셨다.
한편 아내인 세오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궁금하여 바다에 나가 보았다.
바위 위에 남편의 신발이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세오녀도 그 바위에 오르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고 남편을 만나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부부가 신라 땅을 떠나 뒤부터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왕은 천문을 맡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신하는 "해와 달의 정(精)이 우리 나라에 있다가 이제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이런 변괴가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곧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어 연오랑과 세오녀를 돌아 오도록 타일렀다.
그러나 연오랑은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하늘의 뜻이니,
어찌 홀홀히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아내가 짠, 가는 명주를 줄 터이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늘에 제사하면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발할 것이요."
라고 말하며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그 비단을 가지고 와서 하늘에 제사했더니
과연 해와 달이 옛날같이 빛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명주를 국보로 모시고, 그 창고를 귀비고라 했고,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이라고 하였다.(지금의 영일만)
영일만은 푸른 파도를 안고 도는 구룡반도와 그 핵심으로
한반도를 호랑이 형국으로 보았을 때, 꼬리에 해당하는
호미곶으로도 유명하다. 한반도의 동쪽 끝에 있으며
울산의 간절곶과 함께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해와 달의 생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는 일월신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제기´를 보면 전후에 신라인으로서 왕이 된
이가 없으니 이는 연오랑이 변경 소읍의 왕이었을 뿐,
중앙의 큰 왕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