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69

연탄 한 장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 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것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울림들림시* 2022.01.10

회양<한시>

회양 / 신위 수레 타고 덜컹덜컹 갈 길은 먼데 동쪽으로 와 예닐곱 고을을 두루 다녔네. 산들은 금강산에 가까워 모두 그와 닮은 형세를 보이고 철령을 가로질러 넘으면 변방이 시작되니 걱정이 된다. 아름다운 수묵화와 채색화처럼 붉고, 노랗고, 보라와 녹색으로 점점이 물든 가을 풍경이로다. 천 리 가야 할 길을 여러모로 따져보더니 서쪽 나루 다리 아래에서 가는 배를 찾는구나.

*울림들림시* 2022.01.10

감각

감각/아르튀르 랭보 여름날 검푸른 저녁이 오면, 나는 오솔길로 갈 거예요. 밀 잎에 발 찔리고 잔풀 밟으며, 나는 꿈꾸는 듯 그 발밑의 신선함을 느끼고 바람은 내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지나가겠죠.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할 거예요. 끝없는 사랑은 내 영혼 속에서 솟아오르겠죠. 그리고 나는 아주 멀리 떠날 거예요, 보헤미안처럼. 자연을 따라, 마치 여인과 함께 가듯 행복하게.

*울림들림시*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