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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돌아가고 싶어

이 녀석들이 성인이 되었다. 큰애는 서른이 넘었고 작은애는 이십 중반을 넘었다. 내가 큰애를 스물다섯에 낳았으니 그때 나보다 나이가 많다. 오랜 세월 탓일까. 아가씨가 된 녀석들 모습에서 저 사진 속 어린아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는 얼굴도 달라졌거니와 생각도 커져서 자식이라기보다 한 존재로서 동등해진 부분이 많다. 아니 우리 머리 위에 서 있다. 엄마 아빠를 보호하려고 하고 무슨 일에서든 앞장서 일을 한다. 남편과 나는 아직 젊다고 느끼고 뭐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데 때론 지들 일에 걸리적거린다는 듯 밀어내곤 한다. 이제야 비로소 하늘의 이치를 알아 눈 앞의 일들을 잘 풀어낼 자신감이 있건만 아이들 눈엔 이미 늙어 약해지고 무지한 부모로밖에 안 보이는가 보다. 우리의 이십 대나 삼십 대 때를 떠올..

*꿈꾸는 하루5* 2022.01.25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엄마! 이 사진 안에서 우리는 어딜 보고 있는 걸까? 시선 속 대상이 생각나지 않네.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 오셔서 맛집으로 소문난 찜갈비 집에 갔는데 말이야. 시골집에서 혼자 살며 영양가 있는 식사 한 번 제대로 못하니까 모시고 갔던 것 같아.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는 엄마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 엄마와 함께 다닐 수 있었던 사진 속 시간이 너무나 그리워. 그때 자주 모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걸 후회도 되고. 늘 내 앞에 닥친 일이 우선이었고,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있으실 것 같아 다음다음으로 미루기만 했었어. 엄마 몸과 마음이 차츰차츰 고장 나는 줄도 모르고. 엄마! 지금 우리 맘에 가득 찬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어찌 줄어들 수 있을까.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은 아마..

*꿈꾸는 하루5* 2022.01.24

울화

시간이 속절없이 간다. 아니 하루를 속절없이 보내고 있다. 이놈의 정치가 뭔지. 이놈의 대선이 뭔지. 간 큰 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세상을 흐려 놓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인터넷 뉴스에 댓글을 단 순간부터 울화가 생긴 건지 울화 때문에 댓글을 단 건지 아침부터 도진 울화가 도무지 식지 않는다. 정치하는 놈들의 술수에 놀아나지 않으려 해도 나도 모르게 휘말리고 만다. 오늘도 그 흙탕물에서 허우적거렸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침묵은 금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름의 명목이었지만 남는 건 울화뿐이다. 어떤 놈이 되건 내 밥에 반찬 하나 더 얹히는 것도 아닌데... 에라, 눈 감고 저 창공이나 날아보자.

*꿈꾸는 하루5* 2022.01.22

작별하지 않는다

어제는 모처럼 시내 서점에 나갔다. 사려던 책은 잊은 채 한강과 은희경의 신작을 집었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안았다. 나는 그녀들을 전적으로 믿는다. 김훈을 믿듯이. 박경리의 토지를 다시 읽어나가는 중이었다. 토지에 빠져 다시 휘청거리는 나날이었다. 토지 속에 들어가 평사리 마을이며 들판과 강가를 거닐고 산을 누비느라 밤까지 잊어갔다. 한강의 소설책 표지를 넘긴다. 하얀 간지에 한강의 수수한 모습처럼 소설 제목이 걸려 있다. 그 아래에 책을 구매한 날짜와 장소 그리고 내 사인을 그림 그리듯 정성껏 그려 넣는다. 작가와 나와의 연결, 그 끈을 잇는 작업이다. 책을 구매하면 언제나 치르는 의식이다. 몇 장을 넘겨 그녀의 새로운 문장과 마주한다. 문장들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위태하다. 자칫하면 읽는 ..

*꿈꾸는 하루5* 2022.01.21

신문

출근하는 남편이 우편함에 꽂힌 조간신문을 거실에 휙 던져놓고 간다. 일과처럼 아침마다 벌어지는 장면이다. 나는 그 신문을 접어서 식탁 한쪽에 밀쳐놓는다. 두꺼운 신문은 푸대접받는 며느리처럼 며칠간 눈길도 못 받다가 끝내 폐지 상자로 내쳐진다. 요즘은 종이 신문을 보는 집들이 거의 없다. 인터넷으로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을 굳이 돈 주면서까지 볼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난 종이 신문을 고집한다. 종이에 찍힌 활자는 책이든 신문이든 무조건 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식탁 위에 읽지 못한 신문이 쌓여간다. 코 앞에 널린 책을 먼저 보느라 신문까지 읽을 시간이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흥미를 잃은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전국지 신문 하나만 신청했는데 지방 신문 서너 개가 끼어온다. 이렇게 하는데..

*꿈꾸는 하루5* 2022.01.19

삼구야! 놀자

삼구야! 놀자 뚝탁! 뚝탁! 퉁탕! 탕탕탕! 망치질 소리가 들린다. 잠결에 어디서 나는 소릴까 가늠해본다. 마당 건너 앞집 리모델링 공사 소리치고는 너무 가깝다. 단련된 망치질 소리 같지도 않다. 내 방 창문 가까이서 넘어오는 소리다. 부지런한 옆집 아저씨가 이른 아침 마당 손질 하는 소릴까. 아니면 간밤 잠을 설친 내 마음이 아저씨한테 닿은 소릴까. 옆집 개 삼구란 녀석 때문에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 언니 말고 또 하나의 걱정이 늘었다. 잠까지 설친다. 요즘 삼구 걱정을 입에 달고 사는 내게 남편과 딸은 짜증을 부린다. 개 주인이 알아서 할 텐데 왜 걱정하느냐며 핀잔한다. 삼구는 일층에 반듯하게 지어 준 제집은 놔두고 허허벌판과도 같은 이층 현관 앞에서 묵는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뙤약볕이 아스팔트를 ..

*꿈꾸는 하루5* 2022.01.18

추위

날씨가 연이어 춥습니다. 살을 에이는 듯한 차가움에 겨울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강의를 들을 때의 황홀한 기분처럼요. 무언가가 확 할퀴는 선뜩한 자극처럼요.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자극들. 그것들을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 문학을 잡기 위해 감각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문학을 잡고 있는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꿈꾸는 하루5* 2022.01.15

욕망과 마주하는 법

오랜만에 참석한 수업시간이 좋았다. 강의보다는 편안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예전, 강의를 들을 때나 마치고 올 때 자잘한 욕망들이 집까지 자근자근 뒤따라오는 게 참으로 싫었다. 그것들은 집안까지 들이닥쳐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그 욕망들이 사그라질 때쯤이면 또다시 다음 수업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욕망에도 좋은 욕망이 있고 해로운 욕망이 있는 듯한데, 아마 그때 인 욕망은 해로운 것이었던 듯싶다. 나이 드니까 욕망덩어리들이 확연히 구별된다. 그래서 안 좋은 욕망이 일때면 마구 달리려 하는 욕망의 전차를 세워놓고 마냥 노닥거린다. 오전에도 그랬다. 마음은 벌써 이층 서재에 가 있었지만 올라가지 않았다. 천천히 손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손걸레질을 하고, 영화를 보고, ..

*꿈꾸는 하루5* 2022.01.11

연탄 한 장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 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것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울림들림시* 2022.01.10

회양<한시>

회양 / 신위 수레 타고 덜컹덜컹 갈 길은 먼데 동쪽으로 와 예닐곱 고을을 두루 다녔네. 산들은 금강산에 가까워 모두 그와 닮은 형세를 보이고 철령을 가로질러 넘으면 변방이 시작되니 걱정이 된다. 아름다운 수묵화와 채색화처럼 붉고, 노랗고, 보라와 녹색으로 점점이 물든 가을 풍경이로다. 천 리 가야 할 길을 여러모로 따져보더니 서쪽 나루 다리 아래에서 가는 배를 찾는구나.

*울림들림시* 2022.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