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帝釋)본풀이란, 말 그대로 제석신의 근본을 풀어 전하는 이야기를 말 합니다.
다시 말해, 제석신의 내력담인 셈이죠.
제석신은 재물의 복과 풍요를 관장하여 큰 섬김의 대상이 되었던 신을 말합니다.
즉, 당금애기가 세 아들을 낳게 되는 과정과 그 아들 삼형제가
제석신(삼불제석)이 되는 과정, 또한 당금애기 자신이 삼신할머니가 되는 이야기가
당금애기 신화 또는 제석본풀이가 되는 것입니다.
당금애기 신화
당금애기 이야기의 시초는 멀리 태초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태초에 세상의 주재자 자리를 놓고 미륵과 석가가 대결한 일화 - 우리 교과서인 구비문학개론에 나와 있는 - 에서 보듯 그 석가 성인이 곧 당금애기와 인연을 맺어 신령한 자식을 낳는 당사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예외 없이 스님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 남주인공의 이름은 자료에 따라 제석님, 황금산 화주승(황금대사), 청금산 청에중, 송불통, 자장법사, 시준님(세존)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기본적으로 ‘부처’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동해안 제석신화의 주인공 ‘시준님’을 소개합니다.
제석(帝釋)본풀이란, 말 그대로 제석신의 근본을 풀어 전하는 이야기를 말 합니다. 다시 말해, 제석신의 내력담인 셈이죠. 제석신은 재물의 복과 풍요를 관장하여 큰 섬김의 대상이 되었던 신을 말합니다. 즉, 당금애기가 세 아들을 낳게 되는 과정과 그 아들 삼형제가 제석신(삼불제석)이 되는 과정, 또한 당금애기 자신이 삼신할머니가 되는 이야기가 당금애기 신화 또는 제석본풀이가 되는 것입니다.
시준님 근본이 어디인가 하면 하늘나라다. 하늘나라 살다가 인간세상 서쪽 나라 개비랑국 태자의 몸으로 환생하여 태어났다. 부모가 늦은 나이에 그를 얻어 보배같이 아꼈으나 세월이 무상한지라 시준님 열 살 때 부친이 병들어 돌아가시고 열한 살 먹어서는 모친이 세상을 떠나니 외톨이 고아가 되고 말았다. 나라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그는 이미 속세에 뜻을 잃은 뒤였다. 부친 옥새를 깊숙이 감춰두고 황금산 깊은 산중에 꼭꼭 파묻혀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갑자기 미친바람이 불더니 그의 발 앞에 염주 한 알이 떨어졌다. 잘 간수하여 심으니 싹이 트고 가지가 뻗어 염주가 주렁주렁 열었는데, 여문 것을 따보니 ‘서 되 서 홉’이 실히 되었다. 시준님은 문득 제 운명을 알아차리고 백팔염주를 실에 꿰어 목에 걸고 금불암 절을 세워 스님 행세를 시작했다. 산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고 도를 닦으니 6년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 비로소 장삼을 떨쳐 입고 바랑을 걸머진 채 사람 사는 마을로 나오는데, 검고 얽고 찡긴 얼굴에 귀밑으로 때가 얼기설기 흘렀다. 겉모습은 이러하되 등 뒤에 보일 듯 말 듯 북두칠성이 응하고 두 어깨에 해와 달이 응하였다.
넓은 세상을 두루 찾아다니던 시준님 발걸음이 머나먼 동쪽 나라 해동조선에 다다랐다. 산천의 수려함이 비길 데 없으니 성인이 여럿 태어날 땅이었다. 그 땅에 누가 있었던가. 이름도 아름다운 당금애기가 있었다. 해동조선 제일 부자 만년 장재비가 아들을 아홉 낳은 다음 명산대천에 정성껏 빌어서 얻은 귀한 딸이었다. 금이야 옥이야 사랑하며 딸을 기르니, 천상 선녀의 화신인 듯 맑은 자태와 고운 마음씨가 눈곱만 한 티끌 한 점 없었다.
해동조선을 유랑하다 당금애기 높은 이름 유심히 전해들은 시준님은 열두 대문 겹겹이 두른 당금애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 앞에 다다르니 세 길 담장이 사방을 둘러 있고 우뚝한 솟을대문이 꽁꽁 닫혀 있다. 하늘을 나는 새와 땅을 기는 쥐도 감히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였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마침 당금애기 아버지 어머니는 산천 유람을 떠나고 아홉 오라비는 나랏일을 돌보러 떠나 집에 있는 이는 당금애기와 몸종 금단춘 명산군뿐이었다. 당금애기는 금단춘과 방에서 수를 놓고 있고 명산군이 꾸벅꾸벅 졸면서 바깥대문을 지키고 있는 터에 난데없는 염불 소리가 진동하니 소동이 일어났다.
“아씨, 웬 스님이 시주를 청하러 왔어요!”
“어른이 계시면 후히 베풀겠지만 도리가 없구나. 기색을 엿보다가 스님이 돌아가시거든 들어와 일러주렴.”
명산군이 몰래 숨어 기색을 엿보는데 염불을 외던 시준님이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철통같은 대문이 와그랑 창창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깜짝 놀란 명산군이 안으로 도망해서 이 문 저 문을 꼭꼭 잠가보았지만 시준님의 신통력을 당할 리 없었다. 열두 대문이 스르렁 툭탁 열리고 나니 당금애기 거처하는 별당 앞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쩐 염불 소리야? 금단춘아 어서 좀 나가보아.”
금단춘이 부리나케 나가보니 검고 얽고 땟국물 흐르는 스님 하나가 목탁을 들고 서 있고 그 옆에 명산군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목을 움츠리고 있다. 시준님은 금단춘을 본 듯 만 듯 방을 향해 시주를 청했다.
“서천서역땅 금불암 화주승이 당금애기께 시주를 청하나이다.”
얼굴이 빨개진 당금애기가 가슴이 쿵쿵 뛰어 어쩔 줄 모르다가 방에서 나서려고 치장을 차리는데 모습이 볼 만하다. 아리따운 얼굴에 분세수를 정히 하고 감태같이 처진 머리 동백기름에 광을 내어 갑사댕기를 잡아맸다. 순금 대단 겹저고리 명주고름 고이 달고, 은조롱 놋조롱 조롱조롱 몸에 차고, 남방사장 호단치마 나비 주름을 고이 잡고, 물명주 단속곳 바지에 삼승버선 태가 난다. 문고리를 살짝 밀고 가죽 꽃신을 받쳐 신고 사뿐사뿐 내려오니 돋아오는 반달이요 넘어가는 일월 같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합장한 채 앵두처럼 붉은 입을 열어 하는 말이,
“스님, 때를 잘못 맞추셨습니다. 부모님이 산천 유람을 가시고 오라버니들이 나랏일로 집을 떠나 곳간이 꼭꼭 잠겼으니 시주 동냥을 드릴 수 없어요.”
“그 일일랑 걱정 마오.”
시준님이 짚고 있던 쇠지팡이를 하늘로 향하고 왼발로 땅을 세 번 구르니 꼭꼭 닫힌 곳간 문이 스르렁 덜컹 열리었다. 당금애기가 놀란 마음을 겨우 진정하면서 입을 열었다.
“스님, 어떤 쌀로 드릴까요? 아버지 드시던 쌀을 드릴까요?”
“그 쌀은 누린내가 나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머니 드시던 쌀을 가져가세요.”
“그 쌀은 비린내가 나서 못 받겠습니다.”
“아홉 오라버니가 먹던 쌀을 드리지요.”
“그 쌀은 땀내가 나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떤 쌀을 달란 말씀입니까?”
“당금애기님 드시던 쌀로 손수 서 말 서되 서 홉을 퍼주오”
당금애기는 할 수 없이 곳간으로 들어가 자기 쌀독을 열고 깨끗한 쌀을 가려 서 말 서 되 서 홉을 떠나가 동냥자루에 조심스럽게 쏟았다. 그런데 그만 자루에 들어간 쌀이 땅바닥으로 주루룩 흘러내리고 말았다.
“딱한 스님아, 어찌 밑빠진 자루를 가지고 동냥을 다닌단 말씀입니까?”
당금애기는 얼른 동냥자루를 기워 나와서 빗자루를 찾아들고 땅에 쏟아진 쌀을 쓸어 모으려 했다.
“부처님께 올릴 쌀을 험하게 다루면 안 됩니다. 싸리나무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주워 담아야지요.”
당금애기는 후원에 올라 싸리나무를 꺾어다가 젓가락을 만들어 땅에 떨어진 쌀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발그레한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는 줄도 모르고, 자기 옷과 남정네 옷이 한데 얽혀 감기는 줄도 모르고.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졌다.
“스님, 됐습니다. 날이 저무니 어서 바삐 길을 나서세요.”
“듣던 말과 다르군요. 이렇게 저문 날에 어디로 가란 말씀입니까? 유수같이 흐르는 밤에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주오.”
당금애기가 하릴없이 방을 내주려는데 아버지 자던 방을 주자 하니 누린내가 나서 못 잔다 하고, 어머니 자던 방은 비린내가 나서 못 잔다 하며, 오라비 자던 방은 땀내가 나서 못 잔다고 한다. 이 방 저 방 다 싫다 하고 굳이 당금애기 자는 방 한구석을 빌려달란다.
여보 아가씨요 그 말씀을 마시옵고
아가씨 자는 방에 이물 병풍 거래 병풍 쌍쌍이 둘러 쳐놓고
아가씨는 병풍 안에다가
정한수 세 그릇 상소반에 떠 받쳐놓고
아가씨는 병풍 안에 잠을 자시고
소승은 병풍 밖에 잠을 자겠습니다.
눈이 동그래졌다가 끝내 거절을 못 하고 자기 방 윗목을 내주는 당금애기. 시준님이 자리에 누워 춘포 장삼 벗어 덮고 잠을 청하다가 슬쩍 병풍 아래를 훔쳐보니 당금애기가 그린 듯 앉아서 수를 놓는데 밤을 꼬박 새울 양이다. 시준님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슬쩍 주문을 외우니 당금애기는 강물처럼 졸음이 밀려와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당금애기는 새벽 닭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꿈이라기에는 너무 놀랍고 생생했다. 오른쪽 어깨에 달이 얹혀 보이고 왼쪽 어깨에 해가 얹혀 보이며, 맑은 구슬 세 개를 얻어 옷고름에도 넣어보고 허리춤에도 넣어보다가 입으로 꿀꺽 삼키는 꿈이었다. 잠에서 깼는데도 생시의 일 같아서 어깨에 해와 달이 앉은 듯하고 뱃속에 구슬이 든 것만 같았다.
주위를 살펴본 당금애기는 다시 깜짝 놀랐다. 자기가 덮고 자던 비단 이불은 간 곳 없고 화주승이 입었던 춘포 장삼 급히 걷어 병풍 너머로 슬쩍 던져봤지만 시준님 덮고 자는 비단 이불을 찾아올 도리가 없다. 발만 동동 구를 뿐.
(당금애기와 화주승이 인연을 맺는 장면은 자료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화주승이 땅에 떨어진 낱알을 전해주자 당금애기가 받아먹었다고도 하고, 낱알을 줍는 동안 두 사람의 옷이 서로 감겼다고도 한다. 화주승이 도술로 당금애기한테 꿈을 불어넣었다고도 하며, 위에 전한 것처럼 두 사람이 덮은 이불이 바뀌어 있었다고도 한다. 그 어느 것이든, 그 상징적 의미가 신성한 남녀가 한 몸으로 결합되는 데 있음은 자명하다. 신탁에 의한 결합, 곧 신성혼(神聖婚)이다.
놀라운 것은 그 신성한 결연을 꽤나 노골적인 성적 결합으로 묘사하고 있는 신화 자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동해안 지역 전승 자료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내 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다음 장면은 우리 민간 신화에서 드물게 보는 에로틱한 대목이다.
당금아가씨 원 같은 방 안에 누워 있는데
얼굴은 돋아오는 반달이요
어찌 곱게도 어여쁘게 맵짜게 잘도 생겼는지
백옥 같은 젖통을 내놓고 누웠으니
시준님이 난데없이 상사병이 일어난다.
얼굴이 붉으락 희락 붉으락
시준님 도술로 피우더니만
난데없이 왕거미가 되어가지고
병풍으로 굼실굼실 넘어간다.
아가씨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더니
아가씨를 폭으로 내려다보고 있더니만
아가씨 자는데 단침 이불 속으로 굼실굼실 기어들어가더니
아가씨 가는 허리를 아드답싹 끌안고
죽을지 살지, 살지 죽을지
바꿈 줄여 끌안고 입을 쪽쪽 맞춘다.
-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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