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작가*

니나와의 재회/헤르만 헤세

아리솔솔 2011. 11. 25. 23:27

 

 

니나와의 재회/헤르만 헤세

 

 

  몇 달간 집을 비운 후 다시 테신의 언덕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놀라고 감동한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느낌이 쉽게 들지는 않는다. 나는 우선 나를 옮겨 심고 새로 뿌리를 내려야 하며 실들을 다시 잇고 습관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봄과 함께 과거와 고향을 되찾아내야만 남국 생활에 다시 익숙해진다. 짐을 풀고 농부의 신발과 여름옷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겨울 동안 침실에 빗물이 들지 않았는지, 이웃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반년 동안 이곳에 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진보가 몇 걸음이나 더 이뤄져서 이 사랑스런 지역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순수의 옷을 점차 벗겨내고 문명의 축복을 채워 넣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럼 그렇지. 다시금 아래 골짜기에서는 언덕을 덮었던 숲이 몽땅 베어졌고 별장 한 채가 건축되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 동네 도로의 모퉁이가 넓어졌고, 그 때문에 매혹적인 옛 정원이 다 망가졌다. 이 지방의 마지막 우편 마차는 사라졌고 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새 자동차들은 너무 커서 좁은 골목길이 꽉 차버린다. 이제 파란 우체부 제복을 입은 피에로 영감이 힘센 말 두 필이 끄는 노란 마차를 몰고 산 아래로 내달리는 모습은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며, 일은 잠깐 쉬고 파체 주점에서 포도주나 한잔 하자고 내가 그를 유혹하는 일도 없게 될 것이다. 아, 그리고 내가 그림을 즐겨 그리던 리구노 너머의 그 멋진 숲 언저리로 가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어느 외지인이 숲과 초원을 사들이고 주위에 철조망을 쳤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물푸레나무 서너 그루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그의 차고가 세워지고 있다.

  그에 반해 포도나무 아래 풀밭은 예전과 다름없이 싱싱한 초록빛이다. 시든 잎사귀 아래서는 예전처럼 초록색 점박이 도마뱀이 바스락거린다. 숲은 상록수 아네모네, 딸기 꽃으로 희고 푸르며, 연녹색 숲 사이로 호수가 시원하고 부드럽게 반짝거린다. 나는 짐을 풀고 나서 마을의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죽은 체스코의 부인에게 조의를 표했고, 니네타에게 찾아가 검은 눈의 딸을 축복해주었다. 나는 화구들도 꺼내 펼쳐 놓았다. 배낭과 작은 의자, 표면이 거친 예쁜 수채화용 도화지, 연필 그리고 물감이었다. 이 일을 할 때 가장 신나는 것은 팔레트의 오목한 곳들을 싱싱하게 반짝이는 물감들로 채우는 일이다. 기쁨을 주는 하늘색, 활짝 웃는 주홍색, 다정한 레몬색, 투명한 자황색. 지금 그 일을 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림 그리기는 잠시 미루고 싶다. 내일까지, 일요일까지, 어쩌면 다음 주가지. 6개월쯤 지난 후에 다시 풀밭에 앉아 붓을 물에 적시고 여름의 한 조각을 종이 위에 옮기려 한다면 눈도 손도 설어서 망연자실 슬픈 마음으로 앉아 있게 될 것이다. 풀과 돌, 하늘과 구름은 전보다 더 아름답고 그것들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한 모험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려야겠다.

  아무튼 온 여름과 가을이 내 앞에 있다. 나는 몇 달 동안은 잘 지낼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희망해본다. 휴가 중의 기나긴 하루하루를 야외에서 보내고, 통풍도 좀 가라앉고, 물감을 갖고 놀면서, 겨울의 도시에서보다는 좀 더 유쾌하고 순수한 삶을 살고 싶다. 세월은 빨리 흘러간다. 몇 년 전 내가 이 마을로 이사 올 때 학교에 다니던 맨발의 아이들이 벌써 결혼을 했고 루가노나 밀라노에서 타자기나 상점 계산대 앞에 앉아 있다. 당시의 노인들, 마을의 원로들은 그동안 세상을 떠났다.

  그 순간 니나가 생각났다. 그는 아직 살아 있을까? 맙소사, 이제야 그녀가 생각나다니! 니나는 내 여자 친구다. 그녀는 이 지방에서 내가 사귄 몇 안되는 여자 친구들 중 하나이다. 일흔여덟 살인 그녀는 새로운 시대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작은 벽촌에 살고 있다. 그녀 집에 가는 길은 가파르고 힘겹다. 땡볕 속에서 수백 미터 산길을 내려가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가야 한다. 그러나 나는 곧장 길을 떠난다. 우선 포도밭과 숲을 지나 산길을 내려가다가 좁다란 푸른 골짜기를 가로질러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간다. 언덕에는 여름이면 시클라멘이, 겨울이면 크리스마스로즈가 만발한다. 나는 마을에서 맨 처음 만난 아이에게 니나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시냐고 묻는다. 아이 말에 따르면 그녀는 요즘도 저녁마다 교회 담장 옆에 앉아 코담배를 마신다. 나는 안심하며 길을 계속 걷는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잃지 않았고,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그리고 잠시 동안은 투덜대며 한탄을 늘어놓겠지만, 다시금 꿋꿋하게 살아가는 고독한 노인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나이와 통풍, 가난과 외로움을 끈질기게 견디면서 즐거움도 찾을 줄 알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어리석거나 비굴하기는커녕 침을 뱉을 줄 알며 최후의 시간까지 의사나 목사는 부르지 않을 그런 모습을 말이다.

  햇살이 눈부신 거리를 걷던 나는 예배당을 지나 고색의 어두운 담장 그늘 속으로 들어섰다. 산등성이 암벽에 당당히 서 있는 이 구불구불한 담장은 세월을 알지 못한다. 이 담장은 영원히 뜨고 지는 태양 외에 어떤 오늘도 알지 못하며 몇십 년, 몇백 년을 두고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 외에 어떤 변화도 알지 못한다. 언젠가는 이 오래된 담장도 무너질 것이다. 아름답지만 칙칙하고 불결한 이 구역은 재개발되고 시멘트와 함석, 수도 시설, 위생 시설, 축음기 그리고 여타 문명의 이기들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니나의 뼈가 묻힌 곳에는 프랑스식 식단을 손님들께 돌리는 이 호텔이 들어서거나 어느 베를린 사람의 여름 별장이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 담장이 남아 있다. 나는 높은 석조 문지방을 넘고 구불구불한 돌층계를 올라 내 여자 친구 니나의 부엌으로 들어간다. 돌과 냉기와 그을음과 커피의 내음은 여전하고 덜 마른 장작의 연기도 자욱하다. 돌바닥 위 커다란 벽난로 앞에 늙은 니나가 나지막한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있다. 벽난로에서는 조그만 불꽃이 타오르고, 그 연기 때문에 니나의 눈에 눈물이 약간 맺혀 있다. 그녀는 통풍 때문에 굽은 갈색 손가락으로 나무 조각들을 불속에 쑤셔 넣고 있다.

  "안녕하세요, 니나. 저를 알아보겠어요?"

  "오, 시뇨르 포에타, 카로 아미코, 손 콘텐트 디 리베데르라!"("오, 시인 양반,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을 만나니 기쁘기 그지없소.")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니나는 기어이 몸을 일으킨다. 일어서는 데 한참 걸린다. 몸이 뻣뻣해서 무진 애를 써야 한다. 나무 담배통을 쥔 그녀의 왼손이 떨린다. 가슴과 등에는 검은 모직 숄을 감고 있다. 아름답지만 늙은 맹조의 얼굴에서 날카롭고 영리한 눈동자가 우울한 냉소를 띠며 반짝인다.그녀는 조롱기가 없지 않은 친근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녀는 이 '황야의 늑대'를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교육받은 사람이고 예술가이지만 큰 재주는 없다는 점 역시 알고 있다. 또 내가 홀로 테신 지역을 어슬렁거리며 그녀 못지않게 행복을 추구하지만 역시 그녀 못지않게 신통치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유감이에요, 니나. 당신이 나보다 40년이나 먼저 태어났다는 게 정말 유감이에요! 당신은 그 누구에게도 아름답게 보일 리 없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심지어 늙은 마녀처럼 보이겠지요. 두 눈은 이글거리고 허리는 굽고 손가락은 지저분하고 코에는 담배가루가 묻은 마녀 말입니다. 하지만 주름진 독수리 얼굴의 그 우뚝한 콧날! 바싹 마른 몸을 곧게 펴고 일어섰을 때의 그 당당한 모습! 게다가 그 아름답고 자유분방하고 대담한 두 눈은 얼마나 영리하고 도도하고 오만하게, 하지만 악의 없이 느껴지는지! 흰 머리의 니나여, 당신은 틀림없이 아름다운 소녀, 아름답고 대담하고 정열적인 여인이었을 겁니다! 니나는 지나간 여름을, 내 친구들을, 내 누이를 그리고 니나도 잘 알고 있는 내 연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사이 그녀는 물주전자를 날카롭게 주시하며 물이 끓는지 살핀다. 그러고는 분쇄기로 빻은 커피 자루를 집어넣고 내게 잔을 내민다. 그녀는 코담배도 권한다. 이제 우리는 난로 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불 속에 침을 뱉고 이야기를 하고 이것저것 묻는다. 그러다가는 서서히 말수가 적어지는 가운데 통풍에 관해, 겨울에 관해, 삶에서 느끼는 절망에 관해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는다.

  "이 망할 놈의 통풍! 정말 고약한 병이야! 스포르카 푸타나!(더러운 화냥년) 악마나 물어갔으면! 뒈져버려라. 이런, 욕은 이제 그만하자구. 자네가 찾아와서 기뻐. 계속 잘 지내보자구. 늙으면 찾아오는 사람도 줄어들어. 이제 내 나이 일흔여덟이야."

  니나는 다시 한 번 힘겹게 일어나 곁방으로 간다. 그 방의 거울에는 색 바랜 사진들이 끼워져 있다. 나는 안다. 지금 그녀가 내게 줄 선물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내게 줄 것을 찾지 못한 그녀는 옛 사진들 중 하나를 건넨다. 그것을 받지 않으면 적어도 한 번 더 그녀 담배통에 코를 박아야 할 것이다.

  그을음이 잔뜩 낀 내 여자 친구의 부엌은 그리 깨끗하지 않으며 전혀 위생적이지 않다. 바닥은 뱉어낸 침투성이고 의자의 짚도 비어져 나와 있다. 그리고 여러분 독자들 중에는 이런 주전자로 끓인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오래된 양철 주전자은 검게 그을렸고 허연 재가 잔뜩 묻어 있으며 가장자리는 수년 동안 덕지덕지 말라붙은 커피 찌꺼기로 두툼하게 덮여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세계와 시간 밖에서 살게 된다. 어딘지 남루하고 궁색하고 퇴락해 있으며 전혀 위생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그 대신 숲과 산 가까이에서, 염소와 닭 가까이에서 (닭들이 꼬꼬댁거리며 부엌 안을 돌아다니다) 그리고 마녀와 동화 가까이에서 살게 된다. 찌그러진 양철 주전자로 끓인 커피 맛은 아주 훌륭하다.

  장작 연기의 씁쓸한 내음이 묻어나는 커피를 진하게 끓이고 그 커피를 마시면서 함께 욕지거리와 정담을 나누고, 늙었지만 씩씩한 니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내게는 춤을 곁들인 차 대접을 열두 번 받는 것ㅂ다, 문학 토론을 즐기는 유명 지식인들의 저녁 모임에 열두 번 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 물론 이 멋진 행사들에도 상대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바깥에는 이제 해가 지고 있다. 니나의 고양이가 들어와 그녀의 무릎 위로 뛰어오른다. 회칠한 돌벽에 비친 불빛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높고 그늘지고 텅 빈 돌집은 겨울에 얼마나 지독하게 추웠을까. 집 안에는 벽난로 속에서 팔딱거리는 빈약한 불꽃과 무릎 통풍을 앓는 노파, 벗이라곤 고양이와 닭 세 마리밖에 없는 외로운 노파뿐이다.

  고양이는 다시 내쫓긴다. 니나는 다시 일어난다. 흐릿한 불빛 속에서 그녀의 모습이 커다란 유령처럼 보인다. 뼈만 앙상한 몸과 하연 머리칼과 맹조처럼 생긴 매서운 눈빛의 얼굴. 그녀는 아직 나를 보내지 않는다. 그녀는 한 시간쯤 더 있어달라 청하고는 빵과 포도주를 가지러 간다.  (192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