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작가*

빨간 물감/헤르만 헤세

아리솔솔 2011. 11. 26. 00:48

 

빨간 물감/헤르만 헤세

 

 

  다시 한 번 간신히 빠져나와 나만의 오전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의무들은 잠시 기다리게 하자. 자질구레한 일상의 일도 잠시 내버려두자. 이 녹슬고 더딘 기계를 계속해서 돌리는 것이 정말로 내 의무일까? 출판사에서 보내온 교정쇄도 기다리게 하자. 내게 겨울 강연을 의뢰하려고 보훔 아니면 도르트문트에서 온 신사분도 기다리게 하자. 대학생과 어린 소녀들의 편지도 잠시 잊어버리자. 그리고 베를린과 취리히에서 온 손님들, 이 전형적인 독일풍 문학청년들도 기다리게 하자. 늘 문학에 대해서만 떠드는 대신 내 집 앞을 서성거리며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해 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그 모든 것에서 나는 도망쳐 나왔다. 이제 몇 시간 동안은 책이나 서재에 관해 까맣게 잊어버릴 게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태양과 나, 이 밝고 부드러우며 사과처럼 푸르게 빛나는 9월 아침의 하늘 그리고 뽕나무와 포도나무의 노랗게 빛나는 가을 잎새뿐이다.

  내 손에는 그림 그릴 때 앉는 간이 의자가 들려 있다. 이것은 내 마술 도구이며 파우스트의 망토이다. 이것의 도움으로 나는 수천 번 마술을 연출했고 어리석은 현실과 싸워 이겼다. 등에는 배낭을 졌고, 그 안에는 조그만 화판과 수채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 작은 물병, 예쁜 이탈리아제 도화지 몇 장 그리고 여송연 하나와 복숭아 한 개도 들어 있다. 나는 10분 후면 들이닥쳐 나를 붙잡을 게 뻔한 우체부를 피해 얼른 집을 나선다. 그리고 마을 밖으로 행진하면서 이탈리아의 옛 군가를 흥얼거린다. "아디오 라 가제르마, 논 치 베드레모 퓨!" ("막사여 안녕,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나는 멀리 가지 않는다. 포도밭 언덕의 그늘진 곳에는 풀잎이 아직도 이슬에 촉촉이 적어 있고 거기로 초원 길이 나 있다. 그런데 내가 그 길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림 한 폭이 나를 불러 세운다. 자신을 무조건 그려야 된다는 듯, 아름답고 신비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은 오래된 수목원이다. 주목과 종려나무, 사이프러스, 목련 그리고 수많은 관목들이 가파른 산을 오르고, 사이프러스의 살짝 휘고 끝이 뾰족한 우듬지가 불꽃처럼 하늘을 찌른다. 그 아래 짙은 초록 바다에서는 새빨간 기와지붕이 불타오르면서 톱니 모양의 매혹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저 위의 잠든 듯 고요한 정원과 수목의 낙원에서는 밝은 색 별장 한 채가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정하고도 요염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사실 나는 마을을 벗어나지도 않은 채 여기 머물러서 웃자란 풀밭 속에 발을 적시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빨간 지붕과 굴뚝 그림자 그리고 테라스의 나뭇잎 바다 속에서 조금씩 보이는 깊고 신비로운 청색이 나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그려야 한다.

  나는 접이 의자를 펼쳐 놓는다. 그것은 집에서 야외로, 의무에서 즐거움으로, 문학에서 그림으로 소풍을 갈 때 나와 함께하는 동무이다. 나는 조심스레 거기 앉는다. 천으로 된 좌대에서 소음이 조금 들린다. 새 못을 몇 개 더 박으라는 경고의 소리이다. 어제 또 그것을 잊어버렸다! 왜였을까? 다시금 독일에서 온 신사가 나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 신사는 남쪽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인데, 요즘 들어 동향인들을 찾아다니며 문학에 관해 떠벌리는 것보다 더 똑똑한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친구의 다리라도 부러졌으면! 아니, 그래선 안 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제발 베를린에나 죽치고 있기를! 내 간이 의자가 나지막이 삐걱거린다. 나는 배낭을 풀밭에 내려놓고 화구 상자와 연필, 도화지를 꺼낸다. 그러고는 화판을 무릎에 올려놓고 스케치를 시작한다. 지붕, 굴뚝과 그 그림자, 언덕의 선, 높은 곳에 환하게 서 있는 별장, 짙은 색 로켓 모양 사이프러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밤나무 줄기, 짙푸른 숲의 그늘에서 경이롭게 빛나는 그 밤나무의 모습. 나는 스케치를 금방 마친다. 오늘은 세밀한 묘사는 하지 않고 색을 칠할 윤곽만 그린다. 언젠가 세밀화를 그리는데 푹 빠져 나무의 잎사귀까지 셀 기회가 다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색깔만이 중요하다. 지붕의 짙은 빨강, 거기에서 은은히 나타나는 청홍색과 보라색, 짙은 나무들을 배경으로 밝게 도드라지는 집의 색깔.

  나는 얼른 물감을 꺼낸다. 조그만 사발에 물을 조금 붓고 거기에 붓을 담근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깜짝 놀란다. 팔레트의 홈 몇 군데가 비어 있다. 깨끗이 긁어내서 완전히 비어 있고 단 한 점의 흔적도 없다. 게다가 빨간색이 없다! 하필이면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색이 없다니! 그 깊은 색조를 표현하기 위해 이 스케치도 한 것이었는데! 빨간 물감 없이 어떻게 저 멋진 기와지붕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맙소사, 도대체 왜 빨간 물감이 없을까? 비어버린 홈들에 왜 색깔을 채워 넣지 않았을까? 아, 나는 즉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삼일 전의 일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는 몸을 씻고 휴식을 취하기 전에 먼저 비어 있는 홈 몇 개에 색깔을 채워 넣으려 했다. 나는 굳어버린 코발트색과 빨간색과 몇 가지 녹색을 긁어냈고 두 손에 물감을 잔뜩 묻힌 채 필요한 물감 튜브들을 장에서 꺼내려 했다. 바로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방문객이 찾아온 것이었다. 문 앞에는 아주 멋진 테니스복을 입은 신사가 있었다. 그에게서는 특급 호텔과 자가용 자동차의 냄새가 났다. 그 신사는 루가노 근처에 잠시 차를 세웠다가 문득 나를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는 내가 쓴 <황야의 늑대>을 읽었으며 자신도 근복적으로는 늑대 기질의 인간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말로 그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화구들을 재빨리 배낭에 쑤셔 놓고 그 신사의 이야기를 15분가량 들었다. 그러고는 그를 현관까지 안내하고 그가 나가자 문을 이중으로 닫고 빗장도 질러버렸다. 그런데 그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물감에 대해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림에 대한 열망과 빨간 지붕에 대한 사랑은 잔뜩 품고 있지만 빨간 물감은 없는 것이다. 외지인들은 절대로 맞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책 따위도 써서는 안 된다!다 그 놈의 책 때문이었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하지만 예술은 열정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을 하려면 지혜로움도 필요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빨간 물감이 없다고 원하는 색조를 그림에서 표현할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그림을 포기해라!" 나는 빨간 물감을 대체할 색을 만들 작정으로 주홍색에 청홍색을 조금 섞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섞어도 원하는 색깔이 나오지 않자, 최소한 대조 효과라도 얻기 위해 지붕 주위 청색이 좀 더 연둣빛을 띠게 만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잔뜩 긴장해서 색을 섞었다. 그리고 낯선 방문객과 문학과 세상은 깡그리 잊어버렸다. 오로지 이 몇 가지 색깔과의 싸움만이 존재했다. 이 색깔들이 어울려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도화지 한 장을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그새 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하지만 도화지를 잠시 말리고 나서 풀밭에 펼쳐보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음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음을 곧바로 깨달았다. 별장 지붕 아래 그림자만은 아름다웠다. 그 그림자는 제 색을 냈고 하늘과도 잘 어울렸다. 비록 하늘은 코발트색 없이 그려야 했지만 말이다. 전경 전체에 색을 너무 많이 칠해서 엉망이 되었다. 빨간 물감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내게 불가능했다. 나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다.

  아, 예술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재능이었다. 예술에서 결정적인 것은 재능, 역량, 혹은 행운이라 불릴 만한 것, 아무튼 뭐라 표현하든 간에 그런 것 한 가지이다! 종종 자 자신도 그와는 반대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가, 얼마만큼 탁월하게 예술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한 사람이 마음속에 정말로 무언가 지니고 있는가, 그가 정말로 어떤 할 말이 있는가 여부가 중요한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다 허튼소리였다! 누구나 마음속에 무언가는 있고, 누구에게나 말할 무엇이 있다. 그러나 침묵하거나 더듬거리지 않고, 말로든, 색채로든, 음조로든 그것을 정말로 표현하기도 한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다! 아이헨도르프는 위대한 사상가가 아니었다. 르누아르도 대단히 심오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들에겐 많든 적든 말해야 할 것이 있었고 그것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은 펜이든 붓이든 던져버리는 게 나으리라! 아니면 틀어막혀 연습을 계속하는 것, 뭔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뭔가 이룰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되풀이하는 길도 있으리라.

  나는 배낭을 꾸리면서 두 번째 길을 책하기로 결심했다.  (192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