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신의 성당과 예배당/헤르만 헤세
북유럽의 개신교도가 알프스 남부 지역에서 발견하는 남유럽의 여러 가지 매력 중 하나는 카톨릭이다. 엄격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내가 젊은 시절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 받았던 인상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 민족이 그들의 성전, 그들의 종교 속에서 너무나 자명하고 소박한 태도로 살아가는 모습, 색채와 위안과 음악의 물결, 활기와 생기의 물결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가톨릭의 중추적 힘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놀라고 매료되었던가. 물론 이탈리아와 알프스 산맥에 인접한 나라들에서 가톨릭은 쇠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 점은 테신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성당 건물들의 대부분은 예전에 지은 것이며 오늘날에는 그런 것을 건축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북유럽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성당들은 눈에 띄게 많고 마치 어머니처럼 생활의 중심점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내면의 양심을 중시하는 개신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사람에게 무엇보다 강한 인상과 감동을 주는 것은 이들의 순진하고 과시적이며 장식적인 경건성이다. 이는 실론 섬이나 중국의 사원 또는 테신의 예배당에서 매한가지로 발견되는 점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영혼의 잃어버린 유년기, 아득한 낙원, 종교 생활의 복된 원시성과 순결성을 떠올리게 된다. 정신적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우리 유럽인들에게 이러한 기쁨과 순결성만큼 부족한 것은 없다.
알프스 산맥을 지날 때마다 나는 온화한 기후의 입김과 처음 들려오는 낭랑한 말소리 그리고 맨 처음 보이는 계단식 포도 농원에서 잔잔하고도 엄숙한 감동을 느꼈다.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성당과 예배당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에서 나는 어머니 곁에 있을 때처럼 삶이 더 부드럽고 온유했던 상태를 기억해냈으며, 더 천진하고 더 단순하고 더 경건하며 더 쾌활한 인간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가톨릭의 경건성과 고대의 경건성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고대 로마와 중유럽 방식의 경작 문화, 즉 층이 진 테라스식 농원에 포도와 꼭 마찬가지로 예배와 신앙에서도 알프스 남쪽의 나라들에서는 시각에 의지하고 성상을 믿는 이교도풍의 경건한 요소들이 오늘날까지 많이 남아 있다. 로마시대에 사원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성당이 서 있고, 들판의 정령이나 숲의 신을 위해 원시적인 작은 돌기둥을 세웠던 곳에는 이제 십자가가 서 있다. 로마 시대에 요정이나 샘의 여신, 밭의 신을 모시는 작은 성전이 있었던 자리에는 오늘날 어느 성자를 기리는 옥외 기둥이나 음각 부조물이 있다. 옛날과 다름없이 이 부조물 앞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옛날과 다름없이 아이들은 꽃으로 이 부조물을 장식한다. 방랑자나 목동들은 실측백나무나 참나무가 심겨 있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어느 여름의 일요일에는 아름다운 파란색과 황금색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간다. 행력 속에 있던 주교는 성호를 긋고 이 작은 성전이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도록, 이 성전이 계속해서 위안과 기쁨을 주며 신성을 환기시키고 우리의 최고 목표인 영혼의 구원을 돌이켜보게 하는 장소가 되도록 축복의 기도를 드린다.
테신에 있을 때면 이런 느낌은 특히 강해졌다. 내가 알프스 남쪽 자락에 와 있다는 것, 내가 태양의 나라이자 가장 유서 깊은 유럽 문화의 땅에 들어섰다는 것을 태양의 온기와 아름다운 언어의 울림, 지혜로운 계단식 포도 경작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런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은 옛것과 새것이 섞여 있는 모든 경건한 건축물들, 모든 성당과 예배당 그리고 성자상이 말해준다. 이 건축물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아름답다. 사실 테신 사람들은 예로부터 뛰어난 건축기사이자 벽공이었으며 이탈리아에 가서 많은 웅장한 건축물의 건설을 돕기도 했다. 성당들이 자리 잡은 장소도 하나같이 아름답다. 이 점은 루가노와 테세레테, 롱코, 젠틸리노 근처의 산 아본디오, 브레간초나 그리고 마돈나 델 사소의 성당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성전의 입구들도 심사숙고하여 아름답게 지어졌다. 성벽 사이의 도로와 다리는 자연스레 성당으로 이어지도록 건설되어 있으며, 입구로 들어가기에 앞서 언제나 앞뜰이 우리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성당을 오가면서 숨 가쁘게 올라가거나 달리듯 내려올 필요가 없다. 우선은 작지만 평평한 앞뜰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거기에는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그리고 대개 입구 앞에는 지붕이 달려 그늘을 드리워주는 홀이 있다. 세 개 내지 다섯 개의 아치가 신성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이 현관 홀은 이미 멀리서부터 우리를 부르며 손짓한다.
목재가 부족하고 석재가 풍부한 이 지방에서는 다른 모든 건물들이 그렇듯 성당과 예배당도 돌로만 지었다. 작은 산마을에 있는 조그만 성당들을 보면 벽에 겉칠을 하지 않아서 벽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지붕도 편마석판으로 덮은 채 겉을 바르지 않았으며 그저 합각머리와 종탑만이 나름의 특색을 나타낸다. 건물 벽에 겉칠을 하고 벽화를 그려 넣은 성당들도 더러 있다. 비록 기후 때문에 건물 외벽의 벽화가 온전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벽화는 드물지 않게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초라하고 단순한 성당들도 많이 있지만 파괴된 성당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도시나 마을에서는 성당이 가장 강한 인상을 풍기고 종탑이 그 짙은 음영을 드리운다. 그리고 고래의 경건성은 드나들기 어려운 깊은 산이나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 곳곳에 침투해 있다. 외딴 벽지일지라도 염소들이 풀을 뜯고 사람들이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작은 성전이 있다. 모퉁이에 있는 예배당 앞으로 도로가 나 있고, 비가 오면 예배당 처마 아래에서 사람들이 쉬었다 간다. 순박하고 귀여운 성자상이 세워져 있고, 돌 지붕 아래 낡은 담벼락 사이에는 아주 작고 색 바랜 성화 벽이 있다. 봄이 되면 아이들이 꽃을 가득 꽂은 유리잔이나 술잔 또는 낡은 양철톷을 그 앞에 갖다 놓는다.
지금까지 한 번도 성당에 들어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곳에서는 어딜 가나 성당을 생각하게 된다. 산꼭대기의 돌길을 걷다가 쉬고 싶은 사람이나 뜨거운 거리에서 그늘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런 건물들을 고마운 마음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산악 지방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성당은 풍경에 운치를 더하는 장식으로, 쉼터로, 길잡이로 또는 눈의 휴식처로 도움이 되며 환영을 받는다. 하지만 성당의 내부에도 아름답고 진기한 물건들이 많이 있다. 루가노 성당의 루이니 그림에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산상 예배당에 이르기까지 테신의 성당들 어디서나 아무 그림이나 프레스코, 제단 부조, 세례반, 석고상을 볼 수 있다. 이런 물건들은 이 산악 지방이 이탈리아 고전 문화와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며 옛 테신 사람들이 조형 예술 분야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음도 알려준다. 이런 예는 수백 가지라도 들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세세한 것들을 언급하면서 굳이 안내자로 나서고 싶지는 않다. 구경은 안내자 없이 하는 것이 훨씬 더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신을 여행하는 사람은 곧 이 장려한 풍경 속 어디서나 옛 예술의 값진 흔적들을 발견하는 운 좋은 경험을 할 것이다.
테신의 사랑스런 성당들이여, 크고 작은 예배당들이여!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그대들은 나를 손님으로 맞아주었던가! 얼마나 많은 기쁨을 내게 선사했던가! 그대들은 내게 얼마나 많은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었고 예술을 통해 행복도 안겨 주었던가! 또 삶에 꼭 필요한 것, 즉 삶을 대하는 유쾌하고 용감하고 맑은 경건함을 얼마나 자주 일깨워주었던가! 나는 그대들 안에서 얼마나 많은 미사를 드렸고 얼마나 많은 성도들의 합창을 들었던가! 그리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성도들이 그대들으 현관에서 쏟아져 나와 햇빗 찬란한 풍경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그대들은 이 지방의 한 부분이다. 바다와 호수, 깊은 야생의 골짜기, 그대들의 종탑에서 울려나오는 장난스럽고 익살스런 종소리가 그런 것처럼, 그리고 숲 속 그늘진 곳의 술집이나 언덕 위의 오래된 새잡이 그물이 그런 것처럼. 그대들의 그늘 아래에서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도 복된 삶을 살 수 있다.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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