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발자취*

영화 피아노

아리솔솔 2009. 8. 28. 20:13

 

 

피아노

 

영상 속에 담겨진 침묵의 소리

 

 

'이상한 것은 내가 침묵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아노 때문이다.'

 

주인공 '이다'는 영국출신 미혼모로서 뉴질랜드를 향해 딸과 함께 떠난다.

아버지가 정해준 남편에게로 가는 것이다.

그와 동행하는 것은 몇 가지 잡다한 짐들과 함께 자신의 분신인 피아노뿐이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여섯 살 때부터 알지 못할 이유로 말을 잃어버린 채

침묵 속에서 살아왔다.

'이다'에게 가능한 대화통로는 피아노와 어린 딸 플로라 그리고 메모지가 전부다.

특히 피아노는 그녀의 육체와 영혼 사이에서 행복과 삶을 지탱하는 그 자체이다.

또한 죽음과 생의 연결고리이자 하나로 결합된 덩어리이다.

 

'나는 딸과 함께 남편의 나라로 가야 한다.'

19세기 말 미개척지인 뉴질랜드 해변가에 두 모녀와 피아노 한 대가 도착한다.

미혼모로서 아홉 살 난 딸 플로라를 가졌기 때문에 고국을 떠나 결혼해야 하는 이다는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새운다.

다음날 나타난 남편이 될 스튜어트는 피아노를 바닷가에 버려두고 떠난다.

야속했다.

이다는 남편의 친구 베인스를 설득하여 피아노를 옮겨오게 한다.

운명의 신은 이런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까?

베인스와 피아노의 인연이 시작되며 베인스가 이다 남편에게 땅을 주는 대가로 그녀에게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그리하여 이다와 베인스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다의 침묵과 자연 현상과 피아노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말.

육체의 언어가 아름답게 교차되면서 이 영화는 영상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걸작으로 표현된다.

미개척지의 밤과 낮만이 있을 것 같은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영상은 따뜻하고 순수한 정서를 담아

우리에게 선물한다.

화면 가득한 블루빛 바다, 질퍽한 갯벌, 밀려오는 파도와 낭랑한 플로라의 음성, 그리고 피아노 소리...

 

이 영화는 줄거리 외에도 가슴속의 남겨진 멋진 영사을 오래 기억하게 한다.

베인스는 이다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행동이든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피아노를 반드시 돌려줄 것을 약속한다.

이를 통해 이다와 베인스는 복잡한 감정과 성적 욕망에 휩싸이고 결국 그들은 비밀스런 사랑에 빠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다의 남편 스튜어트는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이다의 손가락을 잘라 버린다.

베인스와 이다의 사랑이 연결된, 연결고리를 끊어 버린 셈이다.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이 만든 '피아노'는 서구영화에서는 거의 드물게 완벽할 정도의

여성 중심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벙어리 여주인공을 통해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이다의 내면에 깃들은 광기 어린 열정과 그것에 쏠리는 그녀의 아집은 이 영화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데 별 무리가 없다.

강한 시적 언어로 여성의 시각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인간 내면의 성찰을 진지하게 관찰케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다가 피아노와 함께 바다에 빠졌다가 헤엄쳐 나온 장면은

한 여성이 처한 불리한 환경과 그 환경을 극복하고 행복을 쟁취해 내는 삶의 주체로서의

절정을 보여준다.

발이 묶인 채 피아노와 함께 물 속에 뛰어든 이다.

피아노와 분리되어 물 속과 물 위로 분리되어버린 이다와 피아노.

이로써 이다는 분신처럼 여기던 피아노에서 비로소 해방이 된다.

이다의 불행한 과거는 피아노와 함께 침몰되고 그 불행한 과거를 허물 벗듯 벗어 던지고 나온 이다는

더 나은 세상, 유토피아를 향해 출발한다.

스튜어트는 베인스와 이다를 함께 떠나보낸다. 이다와 베인스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간다.

그리고 베인스와 결혼 후 진정한 사랑을 찾은 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피아노를 톻하여 비로소

안정되게 표현하게 된다.

 

누가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는가?

누가 그녀의 목소리를 피아노 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는가?

남편 스튜어트는 그녀가 자신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을 해주길 원했다.

자신에게 그녀가 맞춰주길 원했다.

말 못하는 그녀의 언어를 대힌한 피아노 따윈 자신의 열정을 기울일만한 관심거리가

되질 못했다.

물리적인 힘과 이기심으로 쟁취하고 싶었던 사랑은 그래서 결국 그의 곁을 떠나갔다.

사랑의 승리는 땅을 사는 자의 것이 아니고 땅을 파는 자의 것이었다.

사랑은 물질적인 것으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값을 지불하는 자의 마음의 대가로 얻어진

것임을 알게 한다.

 

침묵하는 사람의 강렬한 눈빛, 미모의 벙어리 여인 역 홀리헌터의 수화와, 딸 플로라의 천진한

대화가 돋보인다.

우울하고 섬세한 마이클니만의 음악도 큰 몫을 하였다.

 

-카타리나 수필집 <겨울 나이테> 중 피아노-

 

2006. 07. 20.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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