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위건부두로 가는 길

아리솔솔 2015. 7. 1. 12:13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어 가면서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마냥 온 집안이 습기로 가득 찼던 어제가, 몇 시간 사이에 사라졌다. 따사로운 햇볕이 사방으로 번지면서 나뭇잎을 말리고 가지에 스며든 물기까지 덜어내고 있다. 젖은 도로가 제 집의 방바닥인 양 찰싹 엎드려 있는 나뭇잎은 얼마 못 가서 벌어질 제 신세를 알기나 할까. 앞집 아주머니의 빗질 소리가 쓱쓱싹싹 힘껏 반복되고 있다. 건너편 이층집, 빨래를 널고 있는 아주머니 몸베 바지 꽃무늬가 유난히 화려하면서 뽀송뽀송하게 다가온다.

  비가 가져가 주는 습기만큼이나 마음을 무겁게 했던 책 내용을 떨쳐낼 수가 없다. 조지오웰이 어둠을 찾아다니며 빛을 기록하는 체험적 글이 내게는 빛이 아니라 쇠뭉치로 짓눌리는 압박감을 준다. 아니 그가 들어가서 본 탄광 속 어둠의 무게만큼이나 내 마음은 온통 검게 멍들어 버렸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아니다, 이건 책일 뿐인 거야, 윤색되고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어, 스스로에게 각인시켜 보지만 어떤 충격적인 일을 최초로 접한 듯 벗어날 수가 없다.

  어느 한 곳의 세계에 가 닿은 시선은 시간과 공간을 잊게 만들었다. 사람이 인간이 얼마만큼 추락할 수 있고 나태할 수 있고 얼마만큼 강인한 존재로 남겨질 수 있는 끈질긴 생명체인지를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노동을 하는가, 노동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분명 먹고살기 위해 일할 테지만 어떤 열악한 곳에 밀착된 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의문이 들곤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뚜렷하게 나타나는지를 보게 된다. 환경이 상황이 사람을 집어삼켜버리는 현장을 처절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조지오웰은 자본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산업 도시 깊숙한 곳에 인간을 개미로 만들어버리는 자본독재의 현장을 보게 된다. 탄광 지대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노동현장을 직접 체험한 후 그 참담함을 면밀하게 써낸 글에서 그의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7․80년대, 인간의 존엄을 말살했던 노동 상황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또한 모습만 달리했지 지금도 여전히 거대 자본 아래서 허우적대는 인간들의 삶을 보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말살하는 현장, 우리와 먼 거리고 다른 세계일 거라 생각되었던 조지오웰의 시대에도 그 모습은 비슷했던 듯하다. 지난한 삶의 길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을 처음보는 듯 마냥 답답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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