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시의 요람 시의 무덤/ 김남주

아리솔솔 2015. 4. 27. 17:54

 

시의 요람 시의 무덤/ 김남주

 

과거의 시는 표현이 내용을 능가했다

그러나 미래의 시는 내용이 표현을 능가할 것이다 ㅡ 맑스

 

당신은 묻습니다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투쟁과 그날 그날이 내 시의 요람이라고

 

당신은 묻습니다

웬놈의 시가 당신의 시는

땔나무꾼 장작 패듯 그렇게 우악스럽고 그렇게 사납냐고

나는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싸움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냐고

하다 보면 목청이 첨탑처럼 높아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도 나오는 게 아니냐고

저쪽에서 칼을 들고 나오는 판인데

이쪽에서는 펜으로 무기삼아 대들어서는 안 되느냐고

세상에 어디 얌전한 싸움만 있기냐고

제기랄 시란 게 무슨 타고난 특권의 양반들 소일거리더냐고

 

당신은 묻습니다

시를 쓰게 된 별난 동기라도 있느냐고

제기랄 시란 게 무슨 타고난 특권의 양반들 소일거리더냐고

 

당신은 묻습니다

시를 쓰게 된 별난 동기라도 있느냐고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혁명이 나의 길이고 그 길을 가면서

부러진 낫 망치소리와 함께 가면서

첨으로 시라는 것을 써보게 되었다고

노동의 적과 싸우다 보니 농민과 함께 노동자와 함께

피흘리며 싸우다 보니

노래라는 것도 나오더라고 저절로 나오더라고

나는 책상머리에 앉아 시라는 것을 억지로 써본 적이 없다고

내 시의 요람은 안락의자가 아니고 투쟁이라고 그 속이라고

안락의자야말로 내 시의 무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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