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자화상/김용택

아리솔솔 2015. 4. 7. 14:36

 

 

자화상/김용택

 

 

사람들이 앞만 보며 부지런히 나를 앞질러갔습니다.

나는 산도 보고, 물도 보고, 눈도 보고, 빗줄기가 강물을 딛고 건너는 것도 보고,

꽃 피고 지는 것도 보며 깐닥깐닥 걷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갔지요.

난 남았습니다.

남아서, 새, 어머니, 농부, 별, 늦게 지는 달, 눈, 비, 늦게 가는 철새,

일찍 부는 바람,

잎 진 살구나무랑 살기로 했습니다.

그냥 살기로 했답니다.

가을 다 가고 늦게 우는 철 잃은 풀벌레처럼

쓸쓸하게 남아

때로, 울기도 했습니다.

 

아직 겨울을 따라가지 않은,

가을 햇살이 샛노란 콩잎에 떨어져 있습니다.

유혹 없는 가을 콩밭 속은 아름답지요.

 

천천히 가기로 합니다.

천천히, 가장 늦게 물들어 한 대엿새쯤 지나 지기로 합니다.

 

그 햇살 안으로 뜻밖의 낮달이 들어오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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