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를 보다
김영인
소통의 부재랄까, 아니면 여문 것과 덜 여문 것의 차이 같은 걸까. 지금까지 3,40대 젊은 작가들이 보인 한계 같은 것을 ⟪보다⟫의 김영하에게서 느껴본다. 글에도 나이가 있는 듯하다. 독자는 자신의 나이보다 더 성숙된 글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현상은 문학의 기능과 맞닿아 있는 것일 거다. 심미적이거나 정서의 카타르시스 아니면 깨달음 같은 효용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에서든, 수사법에서든, 내면의 깊은 성찰에서든, 내용의 감동에서든 어느 하나만이라도 전해진다면 그 글은 문학의 기능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일 테다.
세계적 명작으로 남은 작품들의 특징은 글에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완전성과 완숙미를 볼 수 있다. 그런 작품들은 시공간이나 세대를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읽혀지고 울림을 준다. 글의 통합적인 구조면보다 의식이나 인식의 통찰이 세계적 통합으로 연결된 자연스런 흐름 때문일 것이다. 시나 소설 에세이든 모든 문학 장르를 넘나들면서 말이다.
사십 후반에 서 있는 김영하의 산문은 내게 덜 여문 듯 미흡한 글로 다가왔다. 그의 소설은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아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산문은 생각했던 것보다 모든 면에서 깊이가 약하다. 타국에 몇 년간 거주하면서 높은 파도가 수시로 일렁이는 고국을 바라보는 남다른 작가적 인식세계를 독자인 내가 너무 크게 기대한 때문일까. 소설가에게 산문은 심심풀이로 끼적여보는 잡문에 불과하다는 통설과 맞닿아 있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가치관과 세계관의 관점이 다른 차이일까. 아니면 늘어진 문장이 특징인 그들의 습성 때문일까. 그의 인지도에 비해 책값이 아까워지게 할 만큼 가볍다.
수필과 산문은 일반인이 구별하기 어려운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시중의 산문은 그야말로 잡문이 대부분이다. 그저 가볍게 한 번 읽고 마는 그런 글을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문학의 기능이 요구하는 구속에서 자유롭다. 가까운 사람과 수다 떠는 편안함이 있는 반면 뒤돌아서면 남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깊이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담아야 하는 수필과는 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인지도 높은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그들 본연의 장르를 떠나 짧은 산문을 쓰는 이유는 뭘까? 심심풀이 땅콩인 양 가끔 왜 내놓는 것일까? 이런 잡문에 불과한 끼적임으로 예술적 성취를 느끼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문학이라는 구조의 틀에서 벗어난 해방된 글을 써보고 싶은 것인가, 한번쯤 바깥세상과의 빠른 소통에 대한 갈망일까. 윤오영은 문인들이 흔히 대단할 것도 없는 신변잡사를 즐겨 쓰는 이유는 인생의 편모와 생활의 정회를 느꼈기 때문이고 속악한 시정잡사도 때로는 꺼리지 않고 쓰려는 것은 인생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를 여기서 뼈아프게 느꼈기 때문이라고는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이건 작가의 판단 잣대는 글이라는 점에서 그 누구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무책임하게 글을 내놓는 일은 결국 스스로를 값싸게 팔아먹는 행위라고밖에 나로서는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소설가 김훈이나 시인 류시화의 글에는 산문이라도 분명한 전달이 있다. 정치적인 글이다. 여기서 정치적이라 함은 조지 오웰이 말한,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게 하는, 힘 있는 글을 말함이다. 날카롭고 예리한 시각이든 따뜻한 시각이든 그들은 글로써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키게끔 한다. 자연과 사람을 산문으로도 지극히 아름답게 펼쳐내는 곽재구가 있는가 하면, 시인 이성복처럼 의식 흐름에 바탕을 둔 관념적인 산문도 있고, 논리와 객관성으로 철저하게 다가간 소설가 장정일의 정제된 예리함은 독자에게 지적욕구에 대한 충족을 주기도 한다. 이런 작가들 또한 글의 나이를 떠나 모든 계층을 아우르게 한다.
김영하 소설가는 또 다른 산문을 연작으로 내놓는다고 한다. 작가들의 요즘 추세인가? 출판사들의 발 빠른 상업 전략에 맞춰 급하게 엮여지는 현상은 아닌가 싶어 우울해진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겹게 올라간 정상에서 세상을 차분히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내놓는 그들의 산문이었으면 좋겠다. 픽션의 세상인지 넌픽션의 세상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그려내는 글이 아니었으면 싶다. 되도록이면 날카롭고 예리한 시선으로 부조리한 사회 현상을 포착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산문을 써줬으면 좋겠다. 따뜻하고 정감 있는 산문도 좋겠다. 의식 깊숙한 흐름 안으로 들어가 존재의 본질로 닿게 하는 산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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