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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다리와 바퀴 사이의 사유/ 김훈

아리솔솔 2014. 9. 24. 08:53

 

인간의 다리와 바퀴 사이의 사유/ 김훈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저어갈 때에나 내 두 다리의 힘으로 새벽의 공원을 어슬렁거릴 때 나는 삶의 신비를 느낀다. 이 신비는 내 살이 있는 몸의 박동 속에서 확인되는 것이므로 신비라기에는 너무나 구체적이다. 그래서 이 신비는 증명되는 신비이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때에 이 신비는 날렵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에는 더욱 가볍고 싱싱이를 탈 때에는 훨씬 더 가볍다. 나는 이 작은 글에서 걷기, 자전거 타기, 인라인스케이트 타기, 스케이트보드타기, 싱싱이 타기의 질감들을 말해보려 한다. 인간의 두 다리와 바퀴 사이를 나의 글이 빠르게 달려나갔으면 좋겠다.

  걷기는 사유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친숙한 동작이다. 개도 걷고 사람도 걷는다. 개의 이동을 '간다'고 말하는 일은 부당하다. 내가 걸을 때 팔 다리의 자연스런 동작은 땅 위를 걷는 개의 사지의 움직임과 똑같다. 나는 개를 데리고 땅 위를 걸어갈 때 내 직립보행의 우월감을 버린다.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땅은 내 몸의 근육에 물리적으로 저항하고 내 몸의 근육이 그 저항에 다시 저항함으로써 살아서 앞으로 나아간다. 걸어갈 때 나는 내 종족의 진화의 수억만 년을 삽시간에 돌파해서 아득한 생명의 기원에 당도한다. 그곳은 거칠고 싱싱한 나라다.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달릴 때 내 몸은 바퀴를 통해서 대지와 교감한다. 내 다리가 페달을 밟아서 바퀴를 굴릴 때 바퀴는 내 몸에 찾아온 힘 센 손님처럼 반갑다. 이 손님은 초면부터 친숙한 손님이어서 손님이라기보다는 벗에 가깝다. 그래서 바퀴는 기계가 아니라 내 몸의 일부이며 새롭게 확장된 나 자신의 몸이다. 나는 바퀴와 친숙하지만 바퀴는 여전히 조금은 남이다. 이 거리는 아름답다. 이 거리는, 나와 세상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연결시켜 줌으로써 나를 넓히고, 내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때는 두 다리로 땅을 밀고,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고 두 팔을 좌우로 흔들어서 균형을 잡는다. 인라인스케이트의 바퀴는 자전거의 바퀴보다 훨씬 더 인간 쪽으로 가깝다. 이 바퀴는 인간의 발바닥에서 돋아난, 생래적인 이동수단인 것처럼 느껴진다. 발바닥에 돋은 바퀴로 땅바닥을 밀어서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직립보행의 수억만 년과 비로소 작별하는 것 같지만, 내 팔다리가 흔들리는 동작은 네 발로 땅을 기던 시절의 동작과 똑같아진다. 그래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때, 나는 이 대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지층시대의 유인원처럼 자유롭다. 나는 문명에 구속되지 않는다. 아, 인라인스케이트 타기를 끝내고 다시 내 발바닥만으로 땅을 밟을 때, 땅은 얼마나 큰 신뢰로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인가. 그때 내 발바닥의 행복은 크고 깊다.

  나는 아직 스케이트보드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다리로 땅을 박차고 나서 그 다리를 보드 위에 올려놓고 순간적으로 균형을 회복하는 동작에 내 몸은 아직도 훈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엽기적인 이동수단은 핸들이 없는 것이어서, 진행중에 몸통의 각도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일이 나에게는 아직도 난감하다. 스케이트보드의 꿈은, 아마도, 날아감에 있는 것 같다. 다리로 땅을 박차고 보드 위에서 균형을 취할 때, 인간의 동작은 이제 막 비상하려는 생의 동작에 접근한다. 그 물건의 앞대가리는 그 비상의 꿈을 간직한 유선형이다. 비상하려는 동작은 거듭해가면서 인간은 결국 땅 위를 굴러갈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 굴러감 속에는 단념할 수 없는 창공의 꿈이 살아 있다.

  싱싱이는 또 어떤가. 싱싱이는 주로 어린이들의 놀이다. 아이들이 이 물건에 몸을 싣고 이 골목 저 골목을 씽씽 달린다. 이 대도시의 골목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종족의 어린것들처럼 바퀴를 굴려서 이동하고 있다. 싱싱이는 바퀴에 실리는 이동들 중에서 가장 가볍다. 걷기를 버리고 굴러가는 일이 이토록 가벼울 수가 있다는 것은 놀랍다. 싱싱이를 타고 달릴 때, 나는 이 무거운 삶의 하중에서 풀려난다. 한 번의 발길질로 나는 아주 조금밖에 나아가지 못하지만, 이 짧은 거리에서 나는 자유를 느낀다. 이 자유는 작고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바퀴들을 내 몸에 거느리고, 나는 여전히 땅에 묶여 있고, 땅과 더불어 살아 있고, 땅이 버티어 주어서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