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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풍경의 복된 만남 - 헤세의 그림들 /옮긴이- 박민수

아리솔솔 2011. 12. 1. 11:21

 

 

  두 풍경의 복된 만남 - 헤세의 그림들 /옮긴이- 박민수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어느 사람처럼) 머릿속 풍경에 집착하는 사람은 시선을 자신 안으로만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머릿속에 활자나 영상, 음성 등을 잔뜩 가져와 그것을 바라보는 일에 열중한다. 어느 부분은 배치가 잘못된 것 같고, 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눈에 띈다. 그런 풍경에 만족할 수 없기에 그는 바깥에서 새로운 재료들을 가져오고 배열을 이리저리 바꿔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따금은 자신 안의 풍경을 돌아보며 만족스러워한다. '더 가꿔야 하겠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풍경이야. 어쨌든 나는 이 풍경 속에서 편안해.' 하지만 그런 사람이 어떤 계기로 인해 그 풍경의 초라함과 황폐함을 깨닫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것도 이따금 그 풍경에 느끼던 실망이나 수치감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지독한 감정을 느끼면서.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 달리 그 풍경에서는 질서 대신 혼돈만이 보이고 치명적인 독소의 냄새마저 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다. 시선을 돌리는 순간 자신의 세계는 황폐한 모습으로 방치될 것 같기에. 그래서 그는 개선을 꿈꾼다. 그 살풍경을 멋진 풍경으로 바꾸기 위해,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그는 새로운 재료를 부지런히 모으고 다시 조화로운 배열을 모색하고 폐기해야 할 것들을 추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그런 방식으로는 이미 봐버린 살풍경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임을. 그는 시선의 편향이 위기의 원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음 안의 풍경은 죽는 날까지 가꿔야 하겠지만 그곳만 본다고 가꿔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의 비결은 눈을 바깥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어는 영국 철학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사람의 시선이 바깥 풍경에 길들여지려면 노력과 행운이 따라야 할 것이다(내가 아는 사람도 나름대로 애쓰기는 하지만 아직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서른 중반의 헤세가 보았던 것 역시 마음속의 살풍경이 아니었을까? 아내의 정신병이 심해지고, 막내아들은 중병에 걸리고 자신은 매국노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헤세는 심리 치료를 받아야 했고, 또 그 와중에 가족의 해체까지 경험했다. 다행히도 헤세는 외적 위기가 몰고 온 마음의 풍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절한 길을 찾았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림에의 욕구를 발현함으로써 그의 시선이 지금까지보다 더 바깥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테신 풍경에 눈을 엊고 마음에 비친 그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 풍경도 서서히 변해갔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그의 그림들은 두 풍경의 복된 만남의 표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원고를 만드는 동안 내가 아는 그 사람을 많이 생각했다. 그에게 그리고 이 책의 독자들 중 비슷한 경험을 하는 많은 분들에게도 헤세와 같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주어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