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시집
수많은 편지들을 받고 수많은 사연을 듣는 사람은 갖가지 고통의 중단 없는 물결과 대면하게 된다. 그런 편지들에서는 조용한 한탄과 수줍은 부탁에서부터 냉소적 절망을 이기지 못해 터져 나오는 원망어린 분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뇌의 모습이 발견된다. 단 하루 동안의 편지들이 전해오는 온갖 비탄과 곤경, 빈곤, 기아, 실향의 상황을 나라는 한 개인이 모두 견뎌해야 했다면 나는 지금쯤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특히 아주 객관적이고 눈앞에서 전개되듯 생생한 묘사를 담고 있는 편지들이 많아서 나로서는 자연스레 공감하는 상상력을 동원해 그 상황을 정말로 지각하고 인지하게 될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무척이나 힘이 드는 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그 수많은 사연들을 일일이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마음을 자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모든 사람들은 최소한 어느 정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즉 위안과 조언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물질적 도움도 받아야 할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1년에 몇 번은 내게 특별한 기쁨을 선사하는 편지들이 오며, 나는 그런 편지들에 무척 성의를 기울여 응답한다. 그런 편지들은 그림으로 장식된 시집 수제본을 구입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편지들이다. 나는 수집가들에게 시집 수제본을 팔아서 빈곤과 기아의 나라에 보내는 구호품 조달 비용을 조금 대기도 한다. 이제 여러 달 만에 그런 편지가 또 왔고 나는 다시 돈 버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나는 그런 수제본을 하나 내지 두 개쯤 늘 준비해둔다. 그리고 어느 수집가에게 한 부를 팔고 나면 가능한 한 빨리 새것을 만들어놓는다. 이것은 내가 무척 즐거워하는 일들 중 하나이다. 그 일은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우선 나는 내 아틀리에에 있는 종이 보관 장롱을 연다. 그 장롱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지었을 때 들여놓은 것이다. 이 장롱에는 종이를 보관할 수 있는 아주 넓고 깊숙한 서랍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오래된 고상한 종이들, 대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종이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이 장롱과 종이들은 '어린 시절 절실히 원한 것은 나이가 들어 이뤄진다'는 격언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어린 시절 나는 크리스마스나 생일이 되면 언제나 종이를 선물로 받고 싶어 했다. 여덟 살 때인가 나는 소원을 적는 쪽지에 이렇게 썼다. "슈랄렌 문처럼 커다란 종이 한 장." 더 나이가 들어서도 나는 아름다운 종이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내가 가진 책들이나 수채화 몇 점을 종이와 맞바꿀 때도 많았다. 그리고 종이 보관 장롱을 마련하고부터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종이를 소유하게 되었다.
나는 장롱을 열고 종이 한 장을 골라낸다. 어떤 때는 매끈한 종이가, 어떤 때는 표면이 거친 종이가, 또 어떤 때는 고상한 수채화 도화지가 나를 유혹하며, 가끔은 단순한 인쇄용지에 마음이 끌릴 때도 있다. 이번에는 내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이제는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어떤 종이, 아주 단순하고 약간 누릿한 종이를 찾아보려 한다. 그것은 한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작품인 <벼랑>을 인쇄할 때 사용했던 종이다. 그 종이로 만든 <방랑>의 재고본들은 미군의 폭격으로 소실되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나는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할 때마다 값이 얼마이든 무조건 구입했다. 그리고 생전에 이 책이 다시 출간되는 것을 보는 것이 내가 품고 있는 몇 가지 소망 중 하나이다. 그 종이는 비싼 것은 아니지만 흡입력이 아주 약한 묘한 투과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 위에 수채물감을 칠하면 오래되어 약간 퇴색한 듯한 인상을 준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종이에는 그런 특성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것이 그 종이인지 알 수가 없어서 운에 맡기기로 하고 아무 종이나 집었다. 나는 종이를 꺼내서는 절삭기를 사용해 원하는 크기로 잘랐다. 그러고는 잘린 종이들을 담아둘 적당한 상자를 찾아내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언제나 나는 제일 먼저 표지를 그리며 내가 미리 뽑아놓은 시들에 개의치 않고 그림들을 그린다. 처음 그림 대여섯 점은 조그만 풍경화나 화환이다. 나는 내게 친숙한 모티프를 생각하면서 데생을 하고 색을 칠한다. 그러고는 내 그림들을 보관한 화첩을 꺼내서 몇 가지 표본을 골라낸다.
나는 흑갈색으로 작은 호수와 산을 몇 개 그리며 하늘의 구름도 그린다. 그리고 전면의 언덕배기에 작은 마을을 그려 놓는다. 하늘에는 코발트색을 약간 칠하고 호수에는 프러시아 청색으로 희미한 윤기를 내며 마을에는 금황색이나 나폴리 황색을 덧칠한다. 모든 색을 아주 묽게 칠하고는 부드럽게 물을 빨아들이는 종이 위에서 색채가 살며시 번지며 굳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본다. 나는 물 묻힌 손가락으로 하늘을 문질러서 색깔을 좀 더 연하게 만든다. 나는 내 소박하고 작은 팔레트로 즐거이 최선을 다하며 오랫동안 이 놀이에 지칠 줄 모른다. 물론 더 이상 예전 같지는 않다. 나는 훨씬 더 빨리 지치고 힘이 달려서 하루에 몇 장밖에 그리지 못한다. 하지만 하얀 종이 몇 장이 손수 그림을 그려 넣은 수제본 시집이 우선은 돈으로 변하고 그다음에는 커피와 쌀과 설탕과 기름과 초콜릿을 담은 소포로 변할 것이며, 그것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격려와 위안과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리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정말 기쁘다. 이 수채화 시집은 어린 아이들에게서 환성을, 환자와 노인에게서 미소를, ㄱ리고 너무 지쳐 용기가 꺾인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희미하나마 신앙과 신뢰를 불러내리라...
이것은 멋진 놀이다. 그리고 내 사소한 그림들에 아무런 예술적 가치가 없다 해도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처음 이런 책자를 만들었을 때 내 솜씨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고 형편없었다. 1차 대전이 한창이던 당시에 나는 한 친구의 권유로 전쟁 포로들을 위한 책자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한 때 나는 그런 일을 맡게 되어 기쁘기도 했다. 진정 나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낀 일이기 때문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내가 손수 만든 책들이 있는 전쟁 포로 도서관 같은 것은 없다. 요즘 내가 직접 만든 책을 받는 사람들은 익명의 다수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해서 번 돈을 적십자나 이런저런 자선단체에 기부하지도 않는다. 수년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내게는- 우리 시대의 전반적 경향에 반하여 - 각계각층의 개인적 팬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런 점에서 아마 나는 별스런 독선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정당하기도 할 것이다. 최호산 나는 이 점은 확신할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각자 자기만의 일회적 가치와 특별한 운명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돕는 것이 내게는 훨씬 더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을. 그리고 한 때 내가 부품처럼 속해 있던 거대한 구호 기구가 베푸는 선행과 자선보다 나의 사사로운 후원이 내게는 더 올바르고 불가피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요즘도 나는 세상에 적응하라는 요구에 날마다 부딪힌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관료화와 체계와의 도움을 받아서, 즉 어떤 도구나 여비서, 방법의 도움을 받아서 급박한 문제들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나보고 이를 악물고서 예전의 그날들로 돌아가라는 것인가? 하지만 싫다. 그러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리라. 많은 사람들의 삶을 채운 궁핍함의 파동이 책이 잔뜩 쌓여 있는 내 책상에까지 전해져 온다.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떤 구호 기구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보존되어 있는 그 무엇에 머물러야 하리라! (1949)
'*좋아하는작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풍경의 복된 만남 - 헤세의 그림들 /옮긴이- 박민수 (0) | 2011.12.01 |
---|---|
화가의 기쁨 (0) | 2011.11.28 |
뮌헨에서의 그림 구경/헤르만 헤세 (0) | 2011.11.27 |
시골로의 귀환/헤르만 헤세 (0) | 2011.11.27 |
이웃 사람 마리오/헤르만 헤세 (0) | 2011.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