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장석주
그 많던 카뮈의 "이방인"을 읽던 문학 소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라고 시작하는
그 이상한 소설 대신에 요즘 청소년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일본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는다.
부조리한 인간이란 어떤 사람인지, 왜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는지, 장례식이
끝난 바로 이튿날 애인과 시시덕거리며 코미디 영화를 보고 동침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소년들은 없다. 그리고 아랍인을 태양 때문에 쏘았다, 라고 하는 뫼르소의 말을 끌어안고
몇 날 며칠 고민하는 문학 소년은 어디에도 없다.
17세 때 처음 읽은 "이방인"은 어떤 모험도 재미도 없는 이상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 선박 중개인 사무실에서 일하는 남자의 권태로운 삶을 보여 주는
소설이었다.
실은 이 소설은 얼마나 시적인가!
들판은 태양으로 넘쳐나고,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 시간같이 찾아든다.
콜타르처럼 번쩍거리며 살을 드러내는 길, 핏빛인 땅, 눈을 멀게 하는 비로 쏟아지는 태양!
끓는 금속 같은 햇빛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왜 죄가 되는지 납득할 수 없었던
이 남자는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서야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그는 '세계의 다정스런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죽음을 기다린다.
나는 그토록 재미없는 소설을 그렇게 오랫동안 머릿속에 떠오를 줄 몰랐다.
허버트 로트먼이 쓴 카뮈 전기 두 권을 방금 다 읽었다.
날마다 50쪽씩 거의 한 달여에 걸쳐 읽은 것이다.
1권 726쪽, 2권 636쪽, 실로 방대한 분량이다.
물론 한 달여 동안 이 책만 읽은 것은 아니다.
다른 책들도 읽으며, 그 사이사이에 이 책들을 읽은 것이다.
아주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카뮈에 대해 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알고 있던 카뮈는 부분으로서의 카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비로소 나는 전체로서의 카뮈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로트먼은 경의를 표하고 싶을 만큼 치밀하고 생동감 넘치게 카뮈의 일생을 재구성해 낸다.
한 사람의 생애란 얼마나 복잡하고 다채로운 것인가!
카뮈는 무엇보다도 지중해의 인간이다.
지중해의 바다와 태양을 떼어 놓고서는 카뮈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바다가 어머니라면 태양은 아버지다.
카뮈는 태양과 바다가 행복하게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다.
카뮈가 태어난 프랑스령 알제리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해 있다.
카뮈 문학을 낳은 알제리의 땅은 자궁이고, 바다는 양수다.
카뮈를 작가로 키운 것은 알제리의 땅과 바다, 책과 축구, 연극과 여자들, 그리고 어머니와 가난이다.
1913년에 사납고 야만적인 세계에 내동댕이쳐진 카뮈는 1957년 12월 노벨문학상을 받고
이태 뒤인 1960년 1월 4일 미셸 갈리마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루르마랭에서 파리로 돌아오던
도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진흙구덩이에서 발견된 카뮈의 가방 안에는 아직 끝내지 못한 "최초의 인간" 초고 원고가 들어 있었다.
카뮈는 알제리에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이어서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부임한
장 그르니에와 가까워져 평생을 스승이자 문학의 도반으로 교유한다.
그르니에는 카뮈가 평생 글을 쓰고 싶다는 의식을 갖게 한 인물이다.
그르니에는 카뮈가 죽었을 때 그의 시신 곁을 떠나지 않았고, 장례식 때 울음을 터뜨려
주위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카뮈가 연극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카뮈는 연극에 깊숙이 개입했다.
직접 희곡을 쓰고, 포크너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연극 대본으로 각색했을 뿐만 아니라
연출과 배우로 나섰다.
카뮈는 알제리에서 신문 창간에 관여했고, 기자로서도 성공한다.
'알제 레퓌블리캥'과 '콩바'의 기자 시절 카뮈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기자였다.
카뮈는 유명해지기 전부터 갈리마르출판사에서 일했고, 그 집안사람들과 평생 교유를 멈추지 않았다.
카뮈가 사고를 당한 차를 운전했던 미셸 갈리마르도 그 집안사람 중의 하나다.
카뮈는 대학교 시절 한때 축구 선수를 하고 수영을 즐겼던 사람이었지만 건강의 혜택은 그다지
받지 못했다.
결핵을 앓으며 평생 병을 달고 산 그가 한 메모에서 '내 육체와 싸울 것'이라고 적은 것도
질병에 담보로 잡힌 육체의 허약성 때문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헌신적인 레지스탕스였고, 사형을 반대하는 신념을 유지했다.
그 신념에 투철했기 때문에 동료들과 등을 돌려야만 했다.
카뮈는 숱한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우정과 연정이 뒤섞인 관계를 맺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은 카뮈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고됨과 환멸과 취약함에서
비롯된 절망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여자들은 카뮈의 수줍어하는 경향, 내면의 어두운 측면들,울적하고 고된 공적인 삶을 밝고
활기 있게 만드는 긍정적 요소다.
카뮈는 '바람둥이'의 특징을 보였지만, 그의 작품 속의 한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열정으로 언제나 전심전력을 다해 여자들을 사랑' 했다고 할 수 있다.
카뮈는 21세 때 친구 애인이었던 시몬 이에와 결혼한다.
시몬 이에는 미모가 뛰어나고 매력적인 여자였지만 그녀의 마약 상습 때문에 곧 헤어진다.
카뮈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혼란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로가 노벨문학상을 탔어야 했다는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카뮈는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나는 앙드레 말로를 선택했을 것이다' 라는
말로 앙드레 말로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앙드레 말로는 '당신의 답변은 우리 두 사람 모두의 명예' 라고 화답했다.
그때 카뮈는 우울증과 집필 장애를 앓고 있었다.
카뮈는 글을 쓰고 있지 않았으며,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어떤 확신도 없었다.
나중에 카뮈는 한 친구에게 '나 거세된 거야!'라고 말했다.
작가에게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어떤 병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카뮈 역시 집필 장애의 기습에 크게 당황한다.
카뮈는 집필 장애라는 불모성과 갑작스런 무감각에 괴로워했다.
그의 우울증은 집필 장애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이 크다.
카뮈는 두개골이 깨지고 목뼈가 부러진 채 사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너무 급작스런 것이어서 고통을 느끼진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대목을 읽는데, 왈칵, 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왜 카뮈를 좋아했을까?
카뮈는 이 세계의 침묵과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끊임없이
삶은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물었다.
메마른 세계에서 산다는 것의 철학적 가치를 묻는 것이 카뮈가 평생 동안 추구한 주제다.
루르마랭에 집을 마련했을 때 그는 고가구 몇 점을 들여놓았는데 그 점을 두고두고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한 친구에게 '세상에 그토록 비참한 일이 많은데 낡은 옷장 하나에 15만 프랑이나
쓰다니 부끄럽네' 라고 말했다.
그토록 정의와 도덕에 확고한 입장을 견지한 그가 한 생을 다해 혼신의 의지력과 정신으로
그 물음을 묻고, 그 답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부조리, 혹은 "이방인", 그것이 카뮈가 찾은 대답이다.
장석주,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동화출판사/문학의 문학, 2009, 122~126쪽
2010. 1. 4 (목) 오늘이 입춘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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