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나는 왜 고전수필을 쓰는가?

아리솔솔 2010. 1. 28. 16:27

나는 왜 고전수필을 쓰는가?


김성복

무애(無涯) 양주동(梁柱東) 은 영문학자였다.
그런데 일본 학자인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교수가 신라의 향가(鄕歌)와
이두(吏讀)를 연구 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 우리의 향가와 고시가 연구에 눈을 돌려
‘고가연구(古歌硏究)’와 ‘여요전주(麗謠箋註)’를
펴냈다. 그런 무애 선생님의 책들에 나는 특별한
호기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읽었고 특히 향가와 고려가사
그리고 이조가사 등을 외우기를 좋아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지금도 그 가사들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내가 우리의 옛 시가들을 그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니 어쩌다 잠시 엇길을 걸어 문학과는
상관없는 분야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내가 직장을
가지면서 얼마동안은 문학을 잊고 살았지만 마음까지
내가 외우고 있었던 아름다운 우리 고전시가를 온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누가 옛 시가를 외라고
하면 나는 거침없이 외울 수 있으니 나의 고전 사랑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을 때,
국문학을 전공하는 교수와 가끔 담소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 외우는 고전시가를 듣더니 나의 진짜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었었다. 이렇게 내가 엇길로 걷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고전을 잊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수필을 쓰면서
고전에 대한 사랑을 되찾게 되었으니 잠시 헤어졌던 애인을
다시 만난 기분이다. 고시가에 관한 많은 책들을 새로이
펼쳐들기 시작하면서 고전수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
것이다. 그것은 유혹이 아니고 마음속에 숨어 있었던
본래의 내 욕망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고전 속에는 조상의 고귀한 얼이 숨어 있고,
아름다운 문화의 향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또한
고시가에 담긴 우리 조상의 정서는 우리글과 말의
아름다움까지 깨닫게 한다.

젊었을 때, 가슴에 접어둔 문학에 대한 꿈을 지금에야
이런 고전수필로 작고 소박하게 이룩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이 고전 속에 숨어 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고 아름답지 않는 것이 없다.

나는 고전수필을 쓰는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오랜 세월 동안 내가 겪었고, 내 마음의 창문으로 바라다
본 세상, 내가 수 없이 경험한 인간의 애락(哀樂)을 이
수필에서 진솔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특히 고전을 매개로
하여 수필을 쓰면서 누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얻었다. 나는 지금 고구려, 백제, 신라인이나
고려인을 만나고 조선의 선비들, 그리고 아름다운 옛 여인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 만남을 통해 나는
고전수필이 지니고 있는 우리의 역사, 심오한 철학과 삶의
고뇌와 진리를 향한 깊은 사색을 알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수필을 일러 자기만의 독백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나의 고전 수필은 하나의 역사이고, 우리의 문화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역사에 대한 깊은 관조, 그리고 세상을
보는 올바른 눈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수필이란 글을 쓸 수 없고, 써서도 안 될 것이다. 내가 다시
읊조리며 쓴 이 고전수필들은 나를 깨우치고, 참선(參禪)을
하듯 삶에 충실하라고 일러주는 것 같아 어느 하나 애착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여기 있는 고전수필들은 나의 긴 인생여정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고전과 먼 삶을 사는 중에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늘 고전이 있었고, 다시 고전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나는
한없는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오랜 세월,
고전을 짝사랑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내 사랑과
함께 살겠노라고 이렇게 세상을 향해 고백하는 것이다.
고전에 대한 나의 정렬을 오래 불태우겠다고. (2006.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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