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그리운 靑山行
김성복의 수필집『추령별곡』을 읽고
홍억선(수필가)
1
수필집『추령별곡』을 펴낸 김성복님은 문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널리 작품활동을 해온 분은 아니다. 우연히 필자와의 만남을 전후해서 그것도 고희를 넘기고 본격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니 굳이 그의 筆歷을 따진다면 한 3년쯤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수필집 추령별곡을 여느 文士가 끄적여 놓은 晩年의 파적거리쯤으로 여긴다면 천부당한 생각이다. 삶의 순간마다 다양한 언어로 표시하여 온 퇴적의 기억들을 수필이라는 그릇으로 온전히 옮겨놓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선 짧은 시간에 그 많은 기억들을 흠결 없이 다듬을 수 있었던 작가의 에너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자전적일 수밖에 없는 내용의 한계를 넘어 수필이 되게 한 문학적 역량도 반가웠다.
추령은 감포에서 경주로 넘어오는 고개 이름이다. 고개란 무엇인가. 세상에 태어나 평생 동안 고개를 넘을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울타리 정도의 의미가 있을 것이나 더 큰 세상을 동경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넘어야할 출구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높은 추령을 넘어 도시로 나오는데 17년이 걸렸다고 한다. 처음에 십 리 길을 조심조심 벗어나 보았고 다음에는 이십 리를, 결국 평생의 길을 추령 밖에서 보낸 작가가 대종천의 가시고기처럼 이제 추령을 되넘어 그 유년의 울타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2.
원론적이지만 문학의 기능은 쾌락과 교훈에 있다. 쾌락은 즐거움을 말한다.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재미가 없으면 외면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수필에서 줄곧 재미만 추구한다면 통속적인 잡문이 되고 만다. 그래서 형이상학적인 장치로 교훈의 기능을 추가해 놓은 것이다. 문학에서 교훈의 기능은 삶의 진실을 일깨우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여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점에서 김성복님의 작품들은 이 두 가지의 문학적 기능에 매우 적절히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작가의 이력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유년의 지독한 가난, 그리고 교사, 장교, 세무사로서 직업, 사랑, 가정, 晩學 등 다양하고도 폭넓은 체험들이 그의 작품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성복님의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의식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의 작품들에서 저음처럼 깔려 있는 깊은 고독을 감지하였다. 뜻밖이었다. 작가는 육척의 장신에다가 준수한 외모를 지녔다. 그와 잠시라도 交遊해본 사람들은 남을 위한 그의 세심한 배려와 젠틀맨다운 풍모에 한결같이 흠모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서 왜 고독의 느낌이 배어나는 것일까. 혹시 노년에서 오는 낭만성 고독이 아닐까.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내뱉는 애달픈 그리움의 독백이다.
고독을 동반하지 않는 사색은 없다. 사색은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일상에 묻혀 잊어버린 삶과 이웃과의 관계를 좀더 새로운 깊이로, 그리고 더 높게 끌어올릴 수 있는 성찰(省察)의 기회가 될 것이다. 고독한 사색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자기 수양이기도 하다.
두류공원에는 낙엽이 지고 있다. 이 낙엽을 밟으면서 고독한 사색에 잠기기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토요일이면 가끔 혼자서 걸어가는 팔공산 낙엽의 길은 더더욱 좋다. -「고독」에서
이처럼 그는 고독에 침잠하면서도 고독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그는 속된 것과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운 가치관을 가졌고, 正道를 벗어난 어떠한 대상과도 쉽게 혼용할 수 없는 선비적인 사색을 가졌다. 따라서 정도로만 걸어온 그의 삶이란 애초부터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그의 고독은 '혼자 걷기'로 나타난다. 일정한 보폭, 일정한 시간으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그의 걷기는 삶의 궤적과도 일치한다.
젊은 시절 군에서 사관후보생의 교육을 받을 때 직각보행(直角步行)이 생도의 보행규칙이었다. 걸을 때 직선으로 걷고 방향을 바꿀 때는 직각으로 방향을 바꾸어 걸어가야만 했다. 직각보행의 필수 조건은 첫째, 가슴을 펴고 걸어야한다. 둘째, 눈은 정면으로 똑바로 보고 걸어야 한다. 셋째, 곧고 바른 마음 자세로 걸어야 한다. 이 세 가지 걷기의 조건은 장교로서 군인 정신을 심어주는 하나의 수행(修行)의 방법이었다. 비록 지금은 걷기 편한 데로, 때로는 구불구불 걷기도 하지만 직각보행으로 다듬어진 '길 바르게 걷기'의 마음은 오늘까지 길을 걷는 나의 자세이기도 하다. 걸어 갈 때 가슴을 펴서 앞을 바르게 보고, 언제나 곧은 마음 자세로만 걷고 싶은 것이다. -「걷기」에서
인생의 산책과도 같은 작가의 걷기는 단 하루라도 멈추는 법이 없다. 사무실 근처 두류공원에서의 오후 산책은 하루 중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고,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토요일 나들이는 수십 년 동안 계속 이어온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걷기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일상적인 산보가 아니라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관조해 보는 걷기이다.
그가 그렇게 걸으면서 사색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아름다운 고독을 씹어보기도 할 것이고, 그런 고독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희미했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또한 아쉬워지는 자신의 세월을 길게 늘이는 꿈을 꾸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사색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그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붙이는 작업이다.
절로 올라가는 길에 접어들면 길 양쪽에는 전나무, 잣나무, 단풍나무 그리고 참나무과에 속하는 키 큰 활엽수 나무들이 우거져있다. 절 구경을 가는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길가 나무들에게 어느 아름다운 손길이 이름표를 붙여 놓았다. 한 7∼8m 간격으로 수종에 따라 매달아 놓은 이름표를 보고 나는 나무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았다. 누가 나무에게 정다운 이름을 불러주랴. 스님이 가다가 불러줄 것인가. 아니면 가지에 앉는 새들이 불러줄 것인가. 부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합장하면서 불러보았다. 나는 오늘 제 이름도 모르는 나무들 앞에서 부처님께 염불 올리듯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래서 여기 서 있는 '층층나무', '잣나무'도 비로소 제 이름을 깨우친 것이 아닐까?" -「해인사 나무들」에서 그렇다면 그가 이렇듯 사색하며 걸어서 닿고자하는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는 진작에 스스로 '靑山'이라는 호를 붙이고 남들로부터 그렇게 부름 받기를 좋아했다. '청산'의 내밀한 상징성이야말로 그가 밝혔듯이 고독한 영혼이 애달픈 심정으로 갈구해온 피난처요 안식처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정말 청산에 가고 싶고, 청산이 되고 싶기도 하다. 언제나 너울너울 푸르른 산이고 싶고, 우거진 산 계곡에서 맑은 물이 흐르고, 솔바람 소리 들리는 그런 산이고 싶다. 내가 태어난 곳도 시골이라 청산이 있어 사철 푸르고 마을 앞에는 맑은 물이 흘러 어린 시절은 청산과 더불어 살고 청산에서 뛰놀면서 살았다. 어릴 때 청산 아래에서 살다가 도시에 나온 후에는 가끔 작곡가 김연준 씨의 가곡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리라
-「청산에 살고 싶다」에서
이쯤해서 필자는 그의 작품집에 배어있는 고독의 그림자와 하염없이 진행되어온 '혼자 걷기'. 그리고 그가 지향하는 청산행의 인과적 관계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3.
그의 출발지이자 그리움의 종착지인 추령. 그 추령 너머에 수필가 김성복님의 청산은 존재하고 있다. 혼탁한 사회에서 변함 없이 곧은 길만을 고집해 온 그는 어쩌면 남보다 더 고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을성 있게 걸어오면서 찾아본 정신적 안식처는 결국 유년의 푸른 꿈이 자라던 추령 너머 감포 앞바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청산, 고희에 이르도록 평생의 세월을 푸른 산으로 자처하며 살아온 작가야말로 청산의 큰바위 얼굴이다. 그러니 그의 작품에 저음처럼 깔려있는 고독의 향기야말로 어찌 청산행을 꿈꾸어온 회귀본능의 애틋한 몸짓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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