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황탕을 마시려는데
거품은 솟아나고 방울도 부글부글
그 속에 내 얼굴을 찍어 놓았네
거품 하나마다 한 사람의 내가 있고
방울 하나에도 한 사람의 내가 있네
거품이 크고 보니 내 모습도 커다랗고
방울이 작아지자 내 모습도 조그맣다
(중략)
시험 삼아 얼굴을 찡그려 보니
일제히 눈썹을 찌푸리누나
어쩌나 보려고 웃어 봤더니
모두들 웃음을 터뜨려댄다
(중략)
이윽고 그릇이 깨끗해지자
향기도 사라지고 빛도 스러져
백 명의 나와 천 명의 나는
마침내 어디에도 자취가 없네
아아! 저 주공은
지나간 과거의 포말인 게고
이 비석을 만들어 세우는 자는
현재의 포말에 불과한 거라
이제부터 아마득한 후세에까지
백천의 기나긴 세월의 뒤에
이 글을 읽게 될 모든 사람은
오지 않은 미래의 포말인 것을
내가 거품에 비친 것이 아니요
거품이 거품에 비친 것이며
내가 방울에 비친 것이 아니라
방울 위에 방울이 비친 것일세
포말은 적멸을 비춘 것이니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슬퍼하랴
「주공탑명」
·
이것은 주공스님이 입적한 뒤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연암이 쓴 탑명이다.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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