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오피니언*

예술이 갖는 사회적 의미

아리솔솔 2016. 3. 21. 17:03

 

소녀상, 공동체의 연대감 확인한 사회예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했던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평화의 소녀상’은 말 그대로 하나의 상징이 됐다. 철거 논란에 맞서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자는 노숙 농성이 한겨울 추위 속에서 이어졌다. 전국 각지를 넘어 각 지자체의 해외 우호도시에 소녀상을 세우겠다는 계획까지 나왔다.

 

소녀상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조형물로서의 소녀상과 이를 둘러싼 사회현상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자율공공실천회의 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린 ‘소녀상의 예술학’ 토론회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마련됐다. 소녀상의 정치적․사회적 맥락과 함께 예술적 의미까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사회적 소통으로서의 예술공론장

 

토론회를 기획한 김준기 미술평론가는 소녀상현상을 ‘사회예술’로 평가했다. “소녀상은 탈식민 서사를 담은 공공미술작품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이야기를 예술적 소통의 주체로 채택해 의제화했고, 그것을 쟁점화하고 있다”며 “사회적 소통과정을 거쳐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회예술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 평론가는 “철거를 반대하며 밤을 새우는 청년들, 한․일 협상 타결을 부정하는 움직임들은 소녀상이 공동체의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으로 작용하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효녀연합’을 결성하고 소녀상 지킴이‘ 퍼포먼스를 펼쳤던 소셕아티스트 홍승희씨는 “만질 수 없고, 다가갈 수 없었던 이제까지의 예술품과 소녀상은 다르다”면서 “시민들이 소녀상을 안아주고 만져준다. 사람과 예술이 공존하고 관계 맺는 방식에서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소녀상은 ‘이분법적 세계관’ 산물인가?

 

토론에 나선 최범 디자인평론가는 “소녀상은 극단적인 이분법의 세계를 재현하고 있다”면서 “절대적으로 순수한 피해자와 악마와 같은 가해자로 나누고 있는데 역사적 진실에 맞지도 않고 올바른 방법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소녀상은 공공예술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상은 국가주의 예술”이라면서 “한국에서 ‘종북아냐, 친일이냐’를 묻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소녀상은 존재하며, ‘일본을 응징해야 한다’는 의미를 깔고 있는데 이게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녀상 조각가 김운성씨는 “소녀상에 일본 응징의 이미지는 없다”면서 “이분법을 논하기 전에 소녀상 밑에 드리운 할머니 모습의 그림자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조각가는 “할머니들은 한국에 와서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가 쌓인 것이 그림자”라며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에 대해 일본을 향해서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그림자를 표현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소녀상은 순수한 피해자와 순수한 가해자를 가르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일각에서 소녀상을 두고 순수한 피해자와 순수하지 못한 피해자를 만들어 쟁점화하고 있는데, 이게 진짜 문제다. 세월호 때 순수한 유가족과 순수하지 못한 유가족을 구분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녀상을 둘러싼 담론이 민족주의적으로만 소비되는 것이 문제”라며 “위안부를 둘러싼 계급의 문제까지 아우르는 ‘쟁점의 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예술 ‘전형성’ 못 벗어난 소녀상?

 

이태호 경희대 교수는 “한국의 전쟁기념비가 승리의 환호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등 천편일률적인 형태에 머문 것처럼 전국 각지에 세워진 소녀상 또한 연출이나 표현이 지나치게 얌전하고 소극적”이라면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장소 특성상 과도하지 않은 연출과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고 느꼈지만, 다른 공간에 세워진 작품들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국 난징대학살기념관 앞에 설치된 조각상들을 예로 들며 “앞으로 소녀상 또는 소녀의 ‘성노예’로서의 실존과 그 고통에 찬 삶의 서사를 다양하고 생생하게 표현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운성 조각가는 이에 대해 “같은 소녀상을 두고 누군가는 여서엥 대한 범죄 피해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누군가는 억압당한 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소녀상에서 세월호의 아픔까지 읽어내는 사람도 있다”며 “작가 역할은 조각상을 만드는 것까지다. 시민들이 소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는지에 대해 저희가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 조각상을 두고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는 뿌듯함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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