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그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

아리솔솔 2012. 7. 19. 16:21

 

 

  그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

 

  어쩌면 정책은 협상 테이블의 메뉴가 될 수 있다. 가치? 그것도 전술에 따라 칼집에 잠시 넣어둘 수 있다. 그러나 정서! 그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한 인간의 생애가 농축된 것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그만의 스타일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스타일은 무슨 근사한 패션 감각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와 정서를 농축한 생활 양식이다. 걸음걸이와 말투와 웃음과 .농담과 손짓은, 한 인간의 성장과정과 지향하는 가치와 교육, 성격과 문화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동시에 그 어떤 결함을 가리고자 하는 한 인간의 간절하면서도 '미숙한' 연기까지 어김없이 노출시키는, 외부로 노출된 내부, 곧 인간의 세계 전체인 것이다. 저마다의 스타일에 의하여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단 한 명의 존립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으로 서로 공명한다. 공명이란, 그것을 그 자신의 정서로 내면화한 사람이 진실로 울컥해지고, 아랫입술을 꾹 물고 애써 참아가며 가만히 손을 맞잡아주는 울림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깊은 슬픔과 그것이 자아내는 슬픈 소리(음악이 아니라 소리, 그러니까 삶의 심각한 찰과상에 의한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윗니로 질끈 누른 아랫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신음과 마침내 올가미에 걸린 노루처럼 밤새 꺼억꺼억거리는 울음들)에 아무나 공명하고 울어주지는 못한다. 그 정서와 스타일은 시장판에 나가 기자들 불러놓고 떡볶이를 먹거나 선거 포스터에서 억지로 연출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삶 전체가 온전히 막막한 어둠 속에, '보라색' 슬픔 속에 놓여 있어서 한사코 그것을 밀쳐내려 하지만 결국 그것을 마음 깊숙한 곳의 상흔으로 받아들이고 평생 그것을 다스리고 위로하며, 겨우 견뎌낸 사람들이 한숨 한 번 내쉬며 이윽고 나누게 되는 애틋한 눈물이다. 그 눈물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진실로 짜디짠 액체이다. '붉은' 노을이 아니라 '보라색' 노을을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노을 밑에서 성장한 사람만의 몫이다.

  '노간지'라고도 하던가. 나는 '노무현 스타일'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와 같은 스타일을 갖고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정서와 눈물을 가진 사람이, 그것이 농축된 스타일의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스타일은 결코 재연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서정과 그 서정에서 길러진 애이불비의 위대한 연대와 그 연대에 의해 형성되는 진실한 마음의 울림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거의 유일하게, 그 애틋한 눈물을 진심으로 흘릴 수 있었던 사람. 그가 1년 전에 자연의 다른 한 조각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진실로 슬픈 것은, 그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