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이것은 사람이 할 말/김소연

아리솔솔 2012. 4. 27. 23:33

 

 

이것은 사람이 할 말/ 김소연

 

늙은 여가수의 노래를 듣노니

사람 아닌 짐승의 발성을

암컷 아닌 수컷의 목울대를

역류하는 물살

 

늙은 여가수의 비린 목소리를 친친 감노니

잡초며 먼지덩이며 녹슨 못대가리를

애지중지 건사해 온 폐허

온몸 거미줄로 영롱하노니

 

노래라기보다는 굴곡

노래라기보다는 무덤

빈혈 같은 비린내

관록만을 얻고 수줍음을 잃어버린

늙은 여가수의 목소리를 움켜쥐노니

부끄럽고 미끄러운 물때

 

통곡을 목전에 둔 부음

태초부터 수억 년간 오차 없이 진생되었던

저녁 어스름

 

그래서 이것은 비로소 여자의 노래

그래서 이것은 비로소 사람이 할 말

그래서 이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우노니

우리가 발견한 당신이라는

나인 것만 같은 객체에 대한 찬사

 

살면서 이미 죽어본 적 있었다던

노래를 노래하노니

어차피 헛헛했다며

일생이 섭섭하다며

그럴 줄 알았다며

그래서 어쩔 거냐며

 

늙은 여가수의 노래에 박자를 치노니

까악까악 까마귀

훌쩍훌쩍 뻐꾸기

차분하고 투명하며 열렬한 눈물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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