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사람이 할 말/ 김소연
늙은 여가수의 노래를 듣노니
사람 아닌 짐승의 발성을
암컷 아닌 수컷의 목울대를
역류하는 물살
늙은 여가수의 비린 목소리를 친친 감노니
잡초며 먼지덩이며 녹슨 못대가리를
애지중지 건사해 온 폐허
온몸 거미줄로 영롱하노니
노래라기보다는 굴곡
노래라기보다는 무덤
빈혈 같은 비린내
관록만을 얻고 수줍음을 잃어버린
늙은 여가수의 목소리를 움켜쥐노니
부끄럽고 미끄러운 물때
통곡을 목전에 둔 부음
태초부터 수억 년간 오차 없이 진생되었던
저녁 어스름
그래서 이것은 비로소 여자의 노래
그래서 이것은 비로소 사람이 할 말
그래서 이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우노니
우리가 발견한 당신이라는
나인 것만 같은 객체에 대한 찬사
살면서 이미 죽어본 적 있었다던
노래를 노래하노니
어차피 헛헛했다며
일생이 섭섭하다며
그럴 줄 알았다며
그래서 어쩔 거냐며
늙은 여가수의 노래에 박자를 치노니
까악까악 까마귀
훌쩍훌쩍 뻐꾸기
차분하고 투명하며 열렬한 눈물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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