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기(出張記)
1. 선택-서두 쓰기
오늘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어제 밤에는 잠자리에 누워 오늘 출장 갈 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선 어떻게 안동까지 갈까 하는 궁리를 했습니다.
기차로 갈까, 동대구고속터미널로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갈까, 아니면 승용차로 갈까?
기차는 시간이 맞지 않아 처음부터 빼기로 하고,
한 걸음이라도 편리함을 위해 승용차를 두었으니 차를 가져가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어느 길로 가지?
가는 길은 서너 갈래가 있습니다.
경산 나들목에서 차를 올려 중앙고속도로로 갈아 타는 길이 있습니다, 다음, 산격동에서 새로 뚫린 국우터널을 지나 동명으로 빠져 잘 닦아놓은 4차선 국도를 이용하는 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는 곳이 경산에서 가까우니까 하양, 영천 신령을 넘어 의성으로 해서 죽 올라가는 길도 있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침 시간을 확실하게 단축시켜줄 고속도로를 선택했습니다.
비록 당일 다녀오는 짧은 출장이지만 300여리가 넘는 길이니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차껍데기라도 둘러보고 타이어도 한번 차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서기도 전에 머리에 이렇게 생각해 둘 일이 복잡습니다
고속도로는 평일인데다 출근 시간을 조금 비껴나서 무척 한산했습니다.
이러다간 너무 일찍 도착해서 심심할 것 같았습니다.
금방 군위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밥을 잊었습니다.
안동에 도착해 잠시 머뭇거리면 금방 점심 시간이 될 텐데 참을까 말까 또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거라도 먹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휴게소에 들어가서도 아무것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가락국수와 자장면, 만두를 파는 분식코너가 있지만, 아침부터 밀가루 음식은 싫습니다. 햄버거코너도 있습니다. 원래 그런 음식은 잘 먹지 않습니다. 한쪽 구석에는 통감자가 익고 피대기가 몸을 비비 틀고 있습니다. 간이 슈퍼에서 빵과 음료수를 사먹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식·양식 코너에 섰습니다
이제 돌솥비빔밥과 육개장과 황태 국밥과 돈가스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됩니다.
시간을 맞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주차보조원이 안내를 잘 해주어 이번에는 고민하지 않고 쉽게 차를 주차하였습니다. 마지막 선택의 고민은 등록을 하고 대강당에 들어가 앞에 앉을까 뒤에 앉을까 하는 문제만 남았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까지의 준비 작업이 이렇게 힘듭니다.
2. 주제 찾기 - 본문 쓰기
오늘의 주제는『웹 기반을 통한 교수 - 학습 방안 포럼』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과 관련된 보고회나 토론회에 웹교육이란 용어가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는 만병통치약입니다.
(가)
인사말로 연단에 오른 지역 교육계의 수장께서는 상투적인 덕담을 몇 말씀 던지다가 갑자기 신상 문제로 말꼬리를 돌립니다. 각본에 없던 이야기입니다. 조금씩 목소리에 진폭을 키우더니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인사말을 완전히 넘어섰습니다.
말의 끝을 넘겨 짚는 500여명의 청중은 그만 민망스럽습니다.
(나)
기조 강연에 나오신 분은 대학교 교수이십니다.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이 내려옵니다
요약한 강의 내용을 깔끔하게 파워포인트로 작성하여 한 장씩 찰카닥찰카닥 넘깁니다.
모두들 재미있게 시청합니다
문제는 강연자의 목소리입니다.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들릴 듯 말 듯 계속 이어집니다. 차분하다 못해 점점 지겹습니다. 스르르 잠이 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눈을 감고 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다)
단체로 밥을 먹으로 갔습니다.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 지역은 워낙 내륙지여서 예로부터 음식 문화가 그렇게 발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 헛제사밥 집은 간이 맞아 먹을 만하다고 모두 한 마디씩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발을 신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밥값을 묻는 이도 있고, 명함도 받아 가는 이도 있었습니다.
(라.)점심을 먹고 나서는 일선 현장에서 성과를 올린 실무자가 발표자로 등장합니다. 실적물로 어느 연구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까와는 달리 강연자는 힘이 넘치고 자신만만합니다. 눈을 부릅떴다가 팔을 흔들었다가 강당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가끔 박수도 받습니다. 청중의 호응에 고무된 강연자가 오버를 합니다.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드디어는 동네 똥개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제한된 발표 시간을 넘어 사회자의 권고를 여러번 받고도 못내 내려가기를 아쉬워합니다. 이야기도 한물 간 내용입니다
(마) 다음으로 구미에 근무하는 어느 분이 나왔습니다. 시들할 때가 되어서인지 인사를 해도 박수 소리가 약합니다. 발표자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박수를 한 번 더 쳐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모두들 한 번 웃고는 자신을 위해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발표자는 많은 것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제까지 웹 교육 찬양론으로 거품을 물던 사람들과는 달리 웹기반을 바탕으로 한 교육의 문제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집니다. 새로운 시각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받아 적기도 합니다. 발표자는 청중의 반응에 고무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강조할 부분은 몇 번이나 반복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조금도 넘기지 않았습니다. 발표를 마치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박수를 쳤습니다.
3. 참주제- 결말 쓰기
돌아오는 길은 서두를 일이 없기에 국도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안동을 벗어나 조금만 내려오면 무릉도원이란 곳이 있는데 오랜만에 그곳을 지나쳐 보고 싶었습니다. 새길이 나기 전에는 오며가며 속도를 줄여 둘러보며 왔었는데 석양길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냇물과 냇물로 뛰어내리는 산비탈이 상상속의 무릉도원을 이룹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만 그곳을 무심코 지나쳐버렸습니다.
웹과 헛제사밥만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남은 건 '웹교육의 문제점'과 '헛제사밥 생각'뿐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 두 가지가 오늘의 참주제가 되는 거지요.
석양을 안고 돌아오는 길이 그리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4. 에필로그
하루든 한달이든 한 인생이든
세상 만사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 봅니다.
더구나 인생으로 보건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선택의 연속이고, 끝없는 주제 찾기로 진행되어 끝을 맺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짧은 유년의 시절은 서두, 장년은 본문, 황혼은 결말로 견주면 억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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