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근초고왕, 신라의 진흥왕, 고구려 영양왕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으며, 진흥왕은 확장된 영토에 4대 순수비를 세웠고, 영양왕은 수나라의 4차례 침입을 모두 격퇴한 ‘중흥군주’라는 점이다.
그리고 국사를 편찬한 것도 공통점이다.
근초고왕 때 고흥(高興)이 ‘서기(書記)’를, 진흥왕 때 거칠부가 ‘국사’를, 영양왕 때 이문진이 ‘신집(新集)’을 편찬한 것은 국력 팽창과 국사 서술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통일 직후인 7세기 말~8세기 초 김대문(金大問)이 통일의 주역인 화랑들에 대한 ‘화랑세기’를 편찬한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반대로 위기 때도 국사는 편찬된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것은 원나라의 침략에 시달리던 13세기 후반이었다.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도 망국의 위기 속에서 역사서를 저술했다. 그리고 과거 탐구를 통해 미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싶을 때도 국사는 서술된다.
조선후기 이종휘가 ‘동사’에서 고구려를 강조하고, 유득공이 ‘발해고’에서 남북국 시대를 주창한 것은 한반도에 갇힌 역사에 새로운 방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사는 빛나는 업적을 후세에 전하고 싶거나 위기 극복을 희구할 때, 또는 나라의 새 방향을 제시하고 할 때 기술된다.
2006. 10. 22일자 조선일보에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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