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오피니언*

책벌레의 종말

아리솔솔 2015. 11. 17. 17:24

 

 

 

여적(餘適)

 

 

책벌레의 종말

 

 

  나폴레옹은 전쟁터에 나설 때 ‘책마차’를 끌었다. 이집트 원정 때는 책 1000권과 수백 명의 사서와 고고학자들까지 데려갔다. 나폴레옹의 사서(司書)는 신간을 준비하고 있다가 명을 받으면 곧바로 대령했다. 외딴 섬인 세인트헬레나 유배 당시 나폴레옹의 재산목록에는 8000여권의 장서가 들어있었다. 죽은 뒤 유배지 서재엔 2700권이 꽂혀 있었다. 그 때문인지 철학자 헤겔은 독일을 침공한 나폴레옹을 바라보며 ‘저기 백마 탄 세계정신이 지나가고 있다’고 감탄했다.

  나폴레옹과 같은 독서광들은 책벌레(종이벌레)니, 책만 읽는 바보(간서치)니, 책을 지나치게 탐한다는 서음이니 하는 수식어를 무척 좋아한다. 조선 중기의 문인 이식은 ‘어릴 적부터 몸에 밴 문자벽을 늙었는데도 아직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 역시 ’촌에 처박힌 늙은이(정약용)는 뜻이 있다면 서책만을 치우치게 좋아한다(<다산시문집>)고 했다. 토정 이지함은 병중에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은 성혼에게 “공의 독서벽은 마치 여색을 탐하는 성벽과 같다”고 했다. 몸조리에 힘쓰라는 충고였지만 성혼에게는 극찬으로 들렸을 것이다. 선현들은 왜 책을 그다지 좋아했을까. 프랑스의 문인 뒤퐁의 말처럼 ‘글은 곧 사람’이며,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표현처럼 ‘한 인간의 존재는 그가 읽은 책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정치가인 키케로는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 했다. 21일로 도서정가제 시행 1주년을 맞았지만 출판시장의 불황은 여전하다. 중소서점의 매출이 약간 올랐지만 전체 도서판매량이 감소세라는 것이다. 도대체가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니 백약이 무효가 아닌가 싶다. 새삼 윈스턴 처칠의 말을 떠올려본다.

  “서가의 책 한 권을 골라 눈에 띄는 문장부터 그냥 읽어라.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책이 서가 어디에 꽂혀있는지 기억해두라. 책은 당신의 친구가 될 것이다.”

  처칠은 ‘어떤 책이든 사서 서가에 꽂아 두는 것만이라도 훌륭한 독서’라 한 것이다. 어떤가. 지금 책을 읽고 싶지 않더라도 가까운 동네 서점에 가서 서가에 꽂아둘 책을 살 마음도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