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상처를 돌아보라, 한없이 정직하게/공선옥
너의 상처를 돌아보라, 한없이 정직하게/공선옥
태백에 사는 친구가 사진공부를 한다고 하더니 얼마 전에 사진을 보내왔다.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지금은 폐광지대가 되어가고 있는 철암을 찍은 사진이었다.
실은 나도 지난여름 그곳엘 갔었다. 그곳이 광산지대임을 보여주는 흔적인 듯 산등성이에는 아직도 캐낸 석탄들이 비닐에 덮여 있었다. 산이라면 으레 보이는 푸른 숲 대신 비닐에 덮인 산은 황량했다. 그러나 그곳 철암사람들은 산에서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을 황량해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는 것 자체를 황량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 삶 자체가 황량해 보였다.
말하자면 그곳 철암사람들은 산등성이에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아도 좋으니 옛날처럼 산에는 석탄이 그득하고 시냇물은 그 석탄물로 뒤덮여 있어야만 그 삶들이 윤택해질 수 있는 거였다. 아무리 인생 막장이라 하더라도 석탄 캐러 들어온 사람들로 북적여야 살맛이 나는 거였다. 그러나 지금 광부와 그 가족들이 떠난 철암은 떠나지 못한 사람들만 남아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철암 역사에 들어가 봤더니 내가 황량해했던 풍경들이 담긴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나 같은 외지인에게는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예술품들이었다. 김훈이 <풍경과 상처>라는 책에서도 상처를 통해서만이 풍경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듯이, 외부사람들이 황량한 아름다움으로 느끼는 철암의 풍경은 그곳 사람들에게는 상처일 뿐이었다. 마침 철암 시장이 열렸기에 들어가 봤더니 시장 안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았다. 시골 소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 탄 다방아가씨’도 그곳에서는 볼 수 없었다.
친구가 보내온 사진은 철암동 뒤편, 말하자면 철암천 주변의 집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비가 오는 저녁 무렵에 찍은 사진 속에서 철암천 위 시멘트 기둥 위에 위태롭게 선 집들의 창문에는 노란 불빛이 따사롭게 조차 느껴졌다. 위태로운 생의 난간 위에서 한 줄기 불을 밝힌 철암사람들. 그것은 위태롭기에 눈물겨워 보였다. 산등성이 석탄더미를 덮은 비닐조차도 불빛 때문인지 아름다운 푸른색으로 빛났다. 그리고 어젯밤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필시 사진 속의 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할머니가 울부짖는 것을 나는 보았다.
“작년에도 루사 때문에 수해를 당해서 겨우겨우 고친 집인데 태풍 매미 땜에 또 부서졌으니 이걸 어쩌란 말입니까. 우린 이제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옛날에 어떤 기자가 해마다 수해를 입는 마을에 들어가서 취재를 했다.
“해마다 수해 입을 줄 뻔히 알면서 왜 이 동네를 떠나지 않습니까?”
기자로서는 지당한 질문이었을 수도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우리라고 좋은 동네 왜 안 살고 싶겠습니까. 돈만 있어 봐요.”
친구는 철암을 찍으면서도 늘 그곳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선뜻 플래시를 누르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왜냐하면 친구가 찍는 풍경이 그곳 사람들에게는 상처이기 때문에. 모든 풍경은 상처라는, 상처를 통해서만이 풍경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 김훈의 고백은 맞는 말이다.
<침묵의 뿌리: 조세희 사진. 산문집>이라고 쓰인 책을 읽는다. 아니 본다. 내 안의 상처가 그 책에 닿았다. 그 책의 어떤 풍경이 내게 상처로 다가왔다. 탄광촌에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으면서 나는 조세희가 찍은 사진들 속에서, 조세희의 글 속에 나오는 곳에서 내가 언젠가 살았던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안 살았어도 산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책 속에 나오는 사진들. 거기에 철암의 70년대 풍경이 오롯이 담겨 있다. 황톳길이 아닌 탄가루로 검게 변한 골목길에서 ‘고르댕’ 바지에 ‘나이롱 샤쓰’를 입고 뛰ㅣ노는 아이들. 내가 한 번도 그곳에 산 적 없어도 어쩐지 그 아이 중에 내가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유심히 들여다본다. 차마 들여다보기 민망하여 그만 책장을 덮었다가 다시 한 번 내 상처 어루만지듯 책장을 펼쳐보는 것이다.
박수근의 소박한 그림이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렸다고 한다. 그 그림을 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야말로 그림에 나오는 나목처럼 벌거벗은 삶을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일까. 박수근 그림에 나오는 남루한 삶은 이제 어느 부호의 집 거실 벽에 말 그대로 한 점 풍경화로 걸리는 호사를 누리고 있을까. 누구에게는 상처가 되는 것이 누구에게는 풍경이 되는 이 기막힌 전도라니.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자신들의 상처를 직시한 예술을 외면하고, 아니 외면할 수밖에 없고, 부자들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한 풍경을 돈 주고 사는 것이다.
조세희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작가가 풍경으로서의 사진 찍기를 얼마나 경계했는가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한 시대의 진실이 되어 시공을 넘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다. 사진 속의 풍경 속에 내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으면서 어쩐지 내가 그곳에 한번쯤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란 그러니까, 그 상처가 내 상처와 진배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지만 너무도 친숙한 나의 가난한, 나의 남루한 유년의 속살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순간 한없이 정직해지는 것이다.
작가가,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중에는 풍경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기록하는 일도 포함된다. 어떻게? 한없이 정직하게. 자기가 사는 시대에, 그 시대의 상처에 한없이 정직했던 작가의 작품을 보면 눈물 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한 조세희의 많은 작품들은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없이 정직하게 자신과 자신이 사는 시대를 응시하게 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