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아리솔솔 2015. 2. 2. 14:50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덮으며..

 

공선옥의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더디게 읽어냈다. 지루함에서는 아니었다. 요즘의 내 독서 스타일 때문이다. 한 권의 책에 몰두하기보다는 3~4권을 같이 보고 있다. 이런 태도는 글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게 나를 잠식할 때, 한 권의 책에서 전해오는 지루함을 잠시 다른 책으로 달래고자 하는 방편에서, 그 어떠한 것도 심장에 닿지 않는 삭막함에 놓여있을 때, 나의 독서는 이렇듯 잡식성이 된다.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는 예전의 공선옥과 많이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작가에게 시선을 오랫동안 고정시키다보면 글의 방향이나 사고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문체라든가 표현의 변천은 중요하지 않다. 인식의 범위 혹은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어떠한 방식으로 펼쳐지면서 확장되는지가 내게는 자못 흥미롭다. 문학이 한 인간을 구원한다는 차원을 떠나, 잠들어 있던 영혼이 깨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하다. 모든 생명체는 변화를 한다. 그 중에서도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고자 원하고 노력하는 것이 본능인 듯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욕구단계를 연구한 매슬로우의 통찰이 새삼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예전 공선옥의 시선은 자연이었다. 어머니와 같은 흙이었고 물이었고 꽃이었다. 바람이었고 구름이었고 달과 별이었고 비였다. 평범한 아낙이었고 아이들의 엄마였다.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정의로운 삶으로 옮겨간 모습이랄까. 진실을 알게 되고 보게 되면 시선은 자연적으로 소외되고 구석진 곳, 위보다는 아래를 보게 되어 있다. 아니 반대로 구석진 곳, 슬픈 곳을 보게 되면 진실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일 테다.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지, 진정으로 제대로 된 삶의 길은 어떤지를 보게 된다. 그녀는 사변적인 말과 글을 거부한다. 이미 그녀는 책상머리에서 일어선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말은 의미가 없음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소설가 공지영의 변화된 문학에서 난 '그래도 살만한 세상'의 그 느낌을 오랫동안 안고 살았었다. 공선옥이 전해준 감정 또한 그와 같아서 피폐된 사회에서도 한 줌의 희망을 갖게 해준다.

 

이 책이 발행된 년 수를 보니 2005년이다. 발간된 산문집을 전부 훑어보고는 또 다른 글을 기다렸었는데... 그 이후 공선옥을 가까이하지 않았으니 꽤나 오래 되었다. 10년 전에 쓴 이 글을 읽으면서 별반 달라지지 않은 우리 사회를 보게 된다. 물질적으로는 세계가 놀랄 만큼 풍요로워 졌는데 사회인식의 흐름이나 정신적 수준은 얼마나 더디 따라오는지를 보게 된다. 그 당시 공선옥의 고뇌가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슬프게 보게 된다. 세상과 사회는 자본에 의해 철저한 이끌림을 당하고 인간들은 그것에 철저히 복무하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그저 몸으로만 살아가고 있고 몸으로만 말하고 있다. 머리에 자본이 심어놓은 칩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결같은 모습들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다. 잘 먹고 잘 살면서 못 살겠다고들 야단이다. 그것은 더 많이 갖지 못해 안달하는 아우성이고 더더 누리고자 하는 비천한 외침일 뿐이다. 욕망의 춤은 쉽게 멈출 수 없다는 것,  덩달아 그 흐름에 몸을 맡겨야 그나마 소외감이라도 줄일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세상인지. 이런 욕망이 스며든 곳곳을 공선옥은 파헤치고 있다. 발로 뛰며 가슴으로 다가가 말을 걸고 말을 하고 있다.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 그녀의 발걸음에 나도 같이하고 싶다. 크고 거친 소리가 아닌 낮고 부드러운 언어로. 세계와 내가 조화되는 그 곳, 우리들인 그 곳으로 말이다.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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