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작가*

뮌헨에서의 그림 구경/헤르만 헤세

아리솔솔 2011. 11. 27. 21:45

 

뮌헨에서의 그림 구경

 

  나는 예술과 무척 관계가 깊은 사람이지만 대도시인처럼 예술에 예속되어 있지는 않다. 또 대도시인에게 예술은 모든 예술을 넘어서는 다른 무엇, 즉 자연을 대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도시인은 자연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으며, 많은 이들은 예컨대 나무나 꽃이나 새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보다 더 쉽고 확실하게 자동차 마크를 구분한다. 게다가 대도시인이 실제로 자연 한가운데 있게 된다 해도, 즉 바닷가나 산이나 남쪽에 오게 된다 해도 그는 자연과 별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대도시인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푸른 초원이나 파란 바다에 잠시 눈길을 얹어 두기는 하지만 그의 생활이 익숙해 있는 무자연의 영역을 완전히 떠나지는 못한다. 언제나 그는 자신과 자연 사이에 문명의 방어벽을 세워놓는다. 그는 호텔과 살롱, 해변의 등의자, 축음기 그리고 자동차를 포기할 수 없다(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가까이 있게 되었다고 해서 자동차 운전을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도시인들 중에서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모든 아름다움의 두 번째 원천, 즉 예술을 알고 향유하는 데서 종종 놀라울 정도의 세련성에 도달해 있다.

  예를 들면 일몰 광경이나 해변의 모습에 매혹되어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건 거의 클로드 로랭이야!" "르누아르의 그림과 꼭 같아!" 미술 비평가난 수집가 등의 모든 뛰어난 미술 감식가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참된 '예술가'는 그가 아주 훌륭한 미술 감식가라 해도 결코 이러한 인간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강한 예술가들의 첫째가는 중요한 특징은 자연에 대한 무제한적 사랑이다. 즉 자연은 결코 예술의 대체물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예술의 원천이자 어머니라는 사실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견고한 앎이 그들의 특징이다. 나는 예술없이도 오랫동안 지낼 수 있다. 파리의 어느 신진 화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게 되어도 나는 우연히 그 화가의 작품을 보게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유명한 예술 작품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안타까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라면 조각이나 그림 몇 점을 보기 위해 런던이나 베를린으로 여행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주변에는 지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세계가 있다. 밤나무의 어린 잎사귀 하나하나와 내 머리 위의 구름 하나하나는 내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이 세상의 모든 미술관만큼 사랑스럽고 중요하며 매혹적이고 교훈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술 작품들, 특히 그림들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런 종류의 아름다운 사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내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다시 보는 것이다.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지난 후에 베네치아에서 베첼리오의 어떤 그림을 보는 것, 밀라노에서 내가 좋아하는 파리스 보르도네의 그림을 보는 것, 그리고 빈터투어의 라인하르트 가에서 르누아르의 어떤 그림을 보는 것이 내게는 큰 행복일 수 있다.

  최근에 뮌헨으로 여행했을 때 나는 이런 종류의 몇 가지 즐거움이 내 앞에 있음을 알았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뮌헨에 가지 못했으며 예술 도시 뮌헨의 몰락과 이 도시를 지배하는 믿기 어려운 정치적 분위기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 때문에 무거운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뮌헨에 사는 내 친구들 중 몇 명은 아직 살아 있을 것이고 님펜부르크 공원에는 여전히 백조들이 떠다닐 것이며 누군가 나를 술집으로 데려가 훌륭한 모젤 포도주도 사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그림 몇 편이 아직 뮌헨에 있기에 쓸쓸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뮌헨의 분위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예술의 도시로서 그 명색을 잃었다는 평판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좋은 분위기 속에서 훌륭한 옛 그림들과 벗하고 사는 오늘날의 화가들이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내가 뮌헨에서 처음 본 아름다운 그림은 옛 그림이 아니라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내 오랜 벗이자 술친구인 울라프 굴브란손의 그림이었다. 이 멋진 사내가 뾰족한 연필로 그린 아이들의 초상화는 그의 다른 최고 작품들과 상당히 비슷하고 초자연적일 만큼 장식적이었다. 며칠 동안 뮌헨에 있으면서, 올라프와 같은 도시에 있으면서 그를 만나지 못하리라는 것 때문에 나는 마음이 무거웟다. 친구 올라프여,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이번에는 인사도 않고 그냥 갈 생각이네. 자네를 만나는 게 좀 두려워서일세. 자네는 운동선수처럼 튼튼하지만 나야 병약한 사람이지 않은가. 내가 전화를 걸어 자네는 술집으로 불러내면 우리는 열한 시쯤에 벌써 포도주 반 리터를 마실 것이고 내가 다시 길을 떠나려 하면 자네는 벌컥 화를 내고 말걸세. 그리고 나를 차에 태워 자네 집으로 데려가서는 위스키 같은 독한 술을 내올걸세.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자네는 다시 그림을 그릴 테지만 나는 반쯤 죽어서 누워 있게 되겠지. 나는 그러기보다는 뮌헨을 다시 한 번 구경하고 싶네. 뮌헨에는 볼 만한 그림이 몇 점 더 있으니가. 나는 일시적 기분에 쓸려 자네와 만나고 싶지는 않으며 알트도르퍼와 뒤러, 렘브란트, 세잔 그리고 마레의 그림들을 보고 싶네.

  나는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알테 피나코텍을 두 번 찾아갔다. 거기서 나는 예전부터 좋아했던 그림들을 다시 보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작품들도 감상했다. 나는 처음 몇 개의 홀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옛 독일 화가와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을 구경했다. 바르톨로메우스 성당의 제단을 그린 거장과 디르크 보우츠는 매혹적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약간 무거운 마음으로 뒤러의 작품들이 있는 작은 방으로 갔다. 화가 뒤러는 내 마음에 썩 들지 않았고 볼품없이 길게 기른 곱슬머리의 자화상을 보면 늘 거부감이 일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들, 즉 데셍이나 동판화 몇 점을 보면 똑같은 뒤러에게도 감탄의 마음이 일었기 때문에 그 방은 꼭 찾아가야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뒤러의 자화상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감흥을 자아내지 못했지만 네 명의 사도들이 갑자기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작품은 정말로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놀랍도록 회화적으로 그려진 작품이었다. 그 그림에서는 사도들의 얼굴과 손과 옷이 꽃처럼 피어났고 음악처럼 노래를 불렀다. 내가 뒤러를 건너뛰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런 무엇인가를 찾아서 나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의무감 따위도 느끼지 않은 채 걸음을 재촉했다.

  아주 아름다운 그림들이 전시된 홀인데도 돌아보지 않았고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측면의 작은 방, 알트도르퍼의 그림들이 걸려 있는 방으로 직진했다. 거기에는 <알렉산더의 대전투>라는 그림이 있다. 내 생각에 그것은 독일 회화 중에서 가장 기묘하고 신비한 작품이다. 수만 명을 묘사한 이 전쟁화는 독일적인 철저함과 완고함, 꼼꼼함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이런 모든 것이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훌륭하게 극복되었고 어느 프랑스인이나 중국인도 능가할 수 없을 만한 우아함과 은은한 색의 마술에 의해 빛을 발한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나 원, 알트도르퍼라는 이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리느라 아주 여러 해 동안 씨름 했을 게 분명해!" 하지만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맙소사, 이 커다란 그림은 테어느 아침나절에 다 그린 걸지도 몰라. 절대적인 통일성이 나타나잖아! 이것 봐, 빛이 전체 인물들 위에 일관성 있게 비추고 있어!" 나는 오랫동안 멈춰 서서 그림을 감상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내가 좋아하는 다른 그림이 있었다. 그것은 녹색 숲을 그린 작은 풍경화였다. 알트도르퍼의 이 소품에서 나는 전체 세계의 은신처가 될 수 있는 녹원의 모습, 모든 태초 숲의 원형을 발견한다. 이 그림에서는 나무들의 우듬지가 조화롭게 물결치고 있고 그 모든 녹색 위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금빛 색조가 어려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보려 한다면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볼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나는 노이에 피나코텍에도 갔다. 이곳은 미술관 역사상 유일무이한 발상에서 생겨난 것이다. 미술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지니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 나라의 미술관은, 지구상의 다른 민족들에게는 거기 있는 것과 같은 그림을 그리거나 팔 능력이 없다는 점을 조금이라도 나타내려 한다. 하지만 뮌헨의 미술관 신관을 지배하는 것은 정반대의 원리이다. 즉 놀랍게도 겸허와 솔직성의 원리가 이 미술관을 지배하고 있다. 이 원리에 따라 미술관을 꾸미는 것이 그 미술관의 담당자에게 부여된 과제였다. 그는 지난 몇십 년 동안 독일의 회화, 특히 뮌헨의 회화가 얼마나 참을 수 없을 만큼 형편없어졌는가, 그보다 앞선 20년 동안의 독일 회화 또는 동시대의 프랑스 회화와 비교할 때 얼마나 졸작들인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했다. 그는 이 과제를 천재적으로 수행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임의로 아무 홀에서나 관람을 시작할 수가 없고 마치 훌륭한 논증에 순종하듯 배치된 순서대로 그림을 관람할 수밖에 없다. 미술관에 들어오면 우선 가장 훌륭한 독일 회화, 즉 마레와 슈흐, 라이블, 청년기의 한스 토마 그리고 젊은 트뤼브너와 마주하게 된다. 거의 모든 그림이 귀중한 작품들이다.

  그러고 나서 홀 여러 개가 이어지는데, 그곳을 지나는 사람은 1880년대 이후 독일 미술, 특히 뮌헨 미술의 몰락을 두 눈으로 보며 경악하게 된다. 이 거대한 홀들에는 가치 없는 커다란 그림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꽤 괜찬은 작품들도 몇 개 있지만, 이런 것들 역시 결코 높은 수준은 아니다). 빌헬름 시대의 모습과 그 정신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공허한 대형 그림들, 규모는 크지만 질은 형편없는 장식적 그림들- 이런 것들을 보는 것은 고문이다. 우리는 숨이 막히는 기분으로 이 홀들을 지난다. 하지만 그 홀들이 끝난 후에 우리는 이를테면 실망하고 화가 나서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홀로 들어선다. 거기에서 우리는 어떤 것이 진짜 그림인지 보게 된다. 그 조그만 홀에는 프랑스 회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 두 편, 세잔의 <산허리를 잘라낸 철길>과 마네의 <범선>도 있다. 그리고 다시금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정선된 걸작품이 전시된 이 프랑스 회화실에서 나오면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는 어떤 전망을 마지막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그다음 전시실에는, 최고는 아닐지라도 아름다운 현대 회화 작품들이 소규모로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거대한 홀들에서 보았던 유겐트슈틸이나 어지러운 장식들이 얼마나 근복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오늘날의 회화, 독일 회화에도 얼마나 다양한 길이 있는가를 알게 된다. 위안을 주는 이 작은 전시실에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 그것은 격렬하고 참신한 화가 코코슈카의 <베네치아>란 작품이다.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은 채 미술관을 떠난다. 이 미술관에는 악의 없는 재치가 스며 있다. 사람들은 움츠렸던 어깨를 다시 편다. 정말 훌륭한 곳이다. 이 국립미술관은.

  이런 것들을 다시 보게 된 나는 포만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즈음 상연되는 영화 중에는 카를 발렌틴이 출연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뮌헨을 떠날 수 있었다. 어떤 중요한 일을 소홀히 했다는 느낌 없이.   (192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