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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필구성론

아리솔솔 2011. 8. 5. 14:01

수필구성론 / 권대근

 

 

1. 구성의 정의

 

수필의 구성이란 ‘제재를 선택하고 그것을 다시 주제에 어긋나지 않도록 배열하고 결합하는 작업이다. 수필의 장르적 외부 특색은 그 구성에 있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희곡이나 소설과 같이 구성의 압박을 덜 받는 것이 외부적 특색이다. 수필의 3대 구성요소라면 수필의 주제(theme), 수필의 소재(materials) 그리고 수필의 구성(structure)이다. 오창익은 수필의 구성적 요소로 위의 3요소에 ’문장‘을 더하고 있다.

 

우리는 수필을 자주 건축에 비한다.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건축의 목적물 자체는 주제가 되고, 건축의 재료는 소재가 되고, 건축의 설계도는 구성이 된다. 한 편의 수필이 건축물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 건축물을 지을 건축재료를 선택하여야 하는데, 수필을 쓸 재료(글감)가 곧 소재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건물을 완성하기까지 뼈대와 세부계획을 포함하는 설계도는 수필의 구성이 된다.

 

무슨 건물의(주제), 무엇으로서(소재), 어떻게(구성) 지을 것인가가 건축의 기본 3대 요소가 된다. 이때 건축의 설계도 안에는 그 건축의 격식(건물의 종류)과 건축의 공법 및 순서(건축의 과정) 등이 소상히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문학작품에서 plot(구성)이란 낱말은 원래 토지(ground)란 뜻으로 『ground plan(평면도)』즉 설계도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 구성이란 자료정리로부터 작품의 줄거리 속 사건들의 순서나 배열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총체적 계획을 말하는 것이다. 창작과정에서 무슨 장르의 문학이든 구성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특히 수필창작에 있어서 구성은 필수 요소로써 주제, 소재와 함께 3대 구성요소가 된다.

 

2. 수필구성의 특이성

 

특이성(differences)이라고 한 것은 의도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산문 중에서도 수필의 구성만은 희곡과 소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편의상『특이성』이라고 붙인 것이다. 우선 희곡과 소설의 구성은 『plot』으로 적지만 수필의 구성은『 기 승 전 결』이 없는 그저 얼개(structure, frame) 정도로 부르는 것이라고 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마치 수필의 구성이 희곡과 소설의 그것과 같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허구를 전제로 하는 작품의 구성은 매우 치밀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희곡과 소설에서 허구가 진실로 보이는 데는 구성을 면밀히 함으로써 사실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은 평범을 공명의 세계로 확대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허구와 같이 그렇게 구성의 압박을 받지 않는다. 다만 희곡의 구성은 소설보다 더 제압을 받고, 소설은 수필보다 더 제압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3. 수필의 구성요소

 

앞에서 우리는 수필구성의 정의와 특이성을 살펴보았다. 다음은 수필의 구성요소에 대해서 살펴 보자. 수필의 구성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한 편의 수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수필을 형성하는 여러 가지의 구성요소가 서로 유기적으로 통일, 조화 있는 결합을 이루어가야 한다. 수필을 형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수필 구성의 3대 요소인 주제, 소재, 구성에 대해서만 알아보겠다.

 

4. 수필의 소재

 

1) 소재의 개념

 

작품을 쓰는 데 창작의 원재료가 되는 것을 소재(material)라고 한다. 즉, 예술창작의 기초적 소재(원료)로서의 기본적 재료를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자연, 인생 혹은 경험한 사실 등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수필의 소재는 수필이 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말한다. 언어라든지, 문학적인 인습(convention), 사상 또는 개인적인 체험 등이 모두 수필의 소재가 된다. 그러므로, 소재는 수필의 대상이 되는 일체로서 자연, 사회, 인생, 종교, 우주라고 할 것 없이 우리 인간의 내면세계와 외부세계에 가득 차 있다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주의 삼라만상이 곧 소재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재가 바로 수필이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수필적 작업 즉 작품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어떤 소재를 수필로 쓰려고 하는 마음의 충격, 즉 동기화(motivation)의 과정을 밟아야만 비로소 수필작업의 제일보를 내딛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선택된 수필의 소재는 언어적 표현과 수필적 형태를 얻어 수필로서의 형상화(embody)를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2) 소재의 수집과 정리

 

한 편의 수필이 이룩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주제에 알맞은 소재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짧은 단문일지라도 거기에는 그것에 알맞은 소재가 있기 마련이요, 소재가 부족하거나 미비할 때 그 수필은 도중에서 중단되거나 또는 무엇을 써야 할 지 글의 방향을 못 잡고 만다. 또, 우리가 소재의 빈곤이라는 말을 곧 하는 경우도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바 사전에 소재를 풍부하게 수집하고 그 속에서 필요한 것만을 취사선택하여 그것을 다시 정리하여야 한다. 그 수집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① 가급적이면 평범하면서도 새로운 것일 것.

② 범위가 넓고 풍부하며 다양성을 뛸 것.

③ 출처가 명백하고 확실성(신빙성)이 있어야 할 것.

④ 주제에 필요한 것만을 취사선택할 것.

⑤ 독자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것.

 

소재는 작자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음의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계시적 소재와 동시적 소재가 바로 그것인데 이에 대한 내용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① 계시적 소재: 사건, 여행, 행사, 약속 등은 주로 시간성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시간적 순서를 따라 널려 있는 소재를 말한다.

② 동시적 소재: 자연, 사회적, 공간적 상황, 다시 말하면 단체, 클럽, 써클의 활동 상황 또는 학술에 관한 증거와 의견, 오락회의 유희, 의견진술 등은 대개 공간성을 띄고 있으므로 동시적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계시적 소재와 동시적 소재는 결국 소재의 두 성질에 지나지 않는다.

 

문장(수필)의 표현은 예술품과는 달리 계시적 성격을 띄고 있다. 따라서 소재를 계시적으로 배열하여 놓고 표현하여야 한다. 이것은 표현상의 근본적 성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재의 정리도 자연 이 두 성질(계시적 소재와 동시적 소재)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즉, 계시적 소재는 표현에 알맞도록 다시 계시적으로 배열하여야 하고 또 동시적 소재는 다시 계시적 소재로 배열하여야 한다.

 

5. 수필의 제재

 

‘제재’라는 말은 소재, 자료 재료 또는 화제 등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를 지나치게 구별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글감, 제재’면 족할 것이다. 보다 정확히 규정하면, ‘제재’는 한 수필 작품 속의 모든 재료를 대표하는 재료이다. 대표한다는 것은, 다른 재료들을 요약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모든 재료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종속 제재’는 수필 작품에 포함되는 재료 중에서 제재가 아닌 재료이다. 일반적으로 통일성이 있는 수필 작품 하나에는 제재가 하나이고, 종속 제재가 여럿이다. 수필의 ‘제재’에 관한 이대규 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일부의 수필 작품에는 속 제재와 겉 제재가 있다. 속 제재는 다음에 말할 주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제재이다. 겉 제재는 주제와 간접적으로만 관계가 있는 제재이다. 이어령의 ‘풍경 뒤에 있는 것’ 의 속 제재는 ‘한국인’이다. 같은 작품의 겉 제재는 ‘외진 시골의 풍경’이다. 겉 제재는 주제와 직접적 관계가 적으나, 작품 속의 공간을 이루거나, 시간을 알려 주거나, 어조나 분위기를 암시하거나,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는 정보를 제공한다. 겉 제재도 겉 종속 제재를 대표한다. ‘풍경 뒤에 있는 것’의 겉 제재 ‘외진 시골의 풍경’은 겉 종속 제재 ‘자갈이 덮인 황토길, 질경이, 초가 지붕, 돌담, 비석, 냇가, 서낭당, 무덤, 보리밭’을 대표한다.

 

제재와 종속 제재 사이의 중요한 관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제재는 전체이고 종속 제재는 부분인 관계이다. ‘풍경 뒤에 있는 것’의 겉 제재 ‘외진 시골의 풍경’은 전체이고, 겉 종속 제재 ‘자갈이 덮인 황토길, 질경이, 초가 지붕, 돌담, 비석, 냇가, 서낭당, 무덤, 보리밭’은 부분이다. 사상의 수필 ‘권태’의 제재는 ‘여름날의 벽촌 풍경’이다. 이 작품의 종속 제재는 ‘팔봉산, 초록색 벌판, 댑싸리, 개, 암탉, 장기, 개울, 전선주, 웅덩이......' 들이다.

 

이 작품의 제재는 전체이고, 종속 제재는 부분이다. 둘째, 제재는 공통성이 있는 개체의 집합이고 종속 제재는 개체이거나, 제재는 공통성이 있는 종류의 집합이고 종속 제재는 제재의 하위 종류인 관계이다. 이어령의 수필 ‘풍경 뒤에 있는 것’의 제재는 ‘한국인’이고, 종속 제재는 ‘위확장에 걸려 배가 불룩한 시골 아이들, 광대뼈가 나온 시골 여인네, 달리는 짚차 앞에서 허둥거리던 시골의 늙은 부부, 천 년을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다. 이 작품에서는 제재 ‘한국인’이 개체나 하위 종류의 집합인 상위 종류이고, 종속 제재는 그 의미가 제재에 포함되는 개체이거나 하위 종류이다. ‘한국인’은 이 작품 속의 수많은 재료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한국인’이 제재이고, 나머지 재료들은 종속 제재이다.

 

어떤 수필에는 제재만 있고, 종속 제재가 없는 경우도 있다. 박문하의 수필 ‘잃어 버린 동화’의 속 제재는 ‘오막살이 초가 한 채’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속 제재에 지배되는 속 종속 제재가 없다. 이런 작품에서도 제재는 모든 재료를 대표한다고 말한다. 이 경우에 대표한다는 말은 그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라는 것을 뜻하며, 다른 재료를 요약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잃어 버린 동화’에서는 ‘오막살이 초가 한 채’가 그 작품 속의 다른 재료 - ‘콘크리트 기초 공사가 된 새로 지을 집의 터’나, 지은이의 ‘콘크리트 집’과 같은 재료들을 요약하지 않는다“.

 

1) 제재의 발견

 

글감이 흘러 나오는 원천은 다섯으로 나눌 수 있겠다. 1) 자신의 경험, 사색에서 2) 신문, 잡지, 방송에서 3) 인쇄물에서 4) 남과의 대화에서 5) 관찰, 실험, 조사에서. 대개 이 다섯 방향에서 쓸거리를 더듬게 됨이 예사다. 그러므로 많은 소재를 간직하는 길은 1) 견문, 경험 넓히기 2) 뛰어난 사람들의 얘기 듣기 3) 좋은 책 읽기 4) 신문, 잡지 등 많은 정보 갖기 5) 영화, 연극, 음악, 운동에 취미를 갖기다. 인간 생활의 주변에 있는 것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 제재의 기본적 요소, 즉 수필의 기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다음의 세 요소가 아닌가 한다. 즉,

 

① 잊을 수 없는 사람들.

② 잊을 수 없는 일들.

③ 양자가 동시에 제재가 되는 경우 등이다.

 

먼저 작자 자신을 중심으로하여 잊을 수 없는 가장 가까운 인물들을 든다면 첫째 부모, 형제자매, 다음이 친척, 친지의 순이 될 것이다. 수필을 써 보려고 하는 경우, 작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부모나 형제자매의 잊혀지지 않는, 또 잊을 수 없는(작자 자신을 중심으로) 일들을 제재로하여 써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되리라고 본다. 바로 이것이 소재와 제재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제재를 발견하여 가는 일이다. 예를 들면 자연, 동 ■ 식물의 관찰을 통해서 잊혀지지 않는 사실들을 수필화하여 보는 일이다.

 

좋은 글을 위한 좋은 글감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살펴 보자.

 

그 첫째는 주제의식을 확실하고도 명료하게 구체화 할 일이다. 이를테면, 봄꽃으로 봄을 노래하되 ‘선각자적 의식’이란 주제가 사전 구체화되어야 그를 충족시킬 수 있는 꽃, 즉 개나리나 진달래가 손쉽게 �아진다는 말이다. 같은 봄꽃 중에서도 살구꽃이나 복사꽃이라면 그 수필의 주제는 회고나 사향으로 그 맥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평소 사물을 예의 관찰하는 습관을 기르는 일이다. 평소 길가에 굴러마니는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무심히 보아 넘기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것을 주의깊게 관찰하다 보면, 길가로 밀려난 돌멩이에서는 ‘소외된 생명의식’ 눌리고 짓밟힌 풀에서는 ‘끈질긴 생명력’ 같은 것을 어렵잖게 관조할 수가 있다.

 

셋째는 솔직한 자기 눈, 자기 마음으로 제재를 찾을 일이다. 수필은 진리가 아닌 ‘진실의 힘으로써만 독자의 공감이나 미적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개성의 문학이다. 예컨대 산간 벽지의 가난한 어린이가 “저 흰눈이 모두 흰쌀이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썼다면, 읽어가던 선생님의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킬 수 있다. 일년에 고작 한두 번 먹을 수 있었던 쌀밥이었기에, 그렇게도 간절했던 진실한 마음이 있었기에 그 어린 학생의 눈에는 뜰에 내린 하얀 눈이 모두 흰쌀이었으면 했을 것이다. 제 눈으로 본 제 마음의 솔직한 진실이 감동을 불러온다는 말이다.

 

넷째는 깊이 있는 경험을 통해 자신 있는 제재를 택할 것이다. 풍부한 체험은 문학가에겐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특히 제재를 취사 선택하는 일에는 가장 확실한 준거가 된다. 수필은 정직성이나 사실성을 체질로 하는 공감의 문학이므로 수필가에게 있어 체험은 생명이다. 그래서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해 작가는 저무는 창가에서 노을을 붙잡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밤새워 풀벌레 소리에 귀기울이며 젊은 날의 고독을 다시 줍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하루 종일 전철을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기도 한다.

 

다섯 번째는 글감을 항시 메모하고, 이를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는 일이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의 생활은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고 다양해 진다. 바쁘게 좇으며 쫓기다 보면 기억해야 할 소중한 것들을 잊게 된다. 소중한 기억들의 망각, 신변사나 생활 일상이 소재가 되는 수필문학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위의 다섯 항목은 제재보다 주제가 먼저 결정됐을 때의 제재선택 방법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이와 반대로 주제보다 제재가 먼저 주어질 때가 적지 않다. 주어진 소재로부터 어떤 주제를 추출해내는가는 개성을 기조로 하는 수필문학에서는 가히 생명적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사상이나 인생관 또는 가치관에 희석되고 여과됨으로써만 가능하기에 그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6. 주제

 

1) 주제의 개념

 

주제라는 낱말은 독일어의 Theme의 역어인데, 영어로는 Thema 또는 Subject라고도 한다. 작가가 쓰고자 하는 주요사상, 즉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상내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작품 속에 형상화된 중심사상이요, 의미를 뜻한다. 수필의 주제는 다른 수필적 요소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작품 속에 숨겨져 있어야 한다. 즉, 수필 속에 용해되어 표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주제는 수필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중심사상이요, 핵심적인 의미이며 작자가 창작을 한다는 것은 곧 좋은 주제를 찾아내어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킨다는 말인 만큼 주제는 작자에 의해서 선택된 제재에 대한 작자 자기 나름대로의 이해(해석)이며, 가치평가이며, 제재에 대한 작자로서의 의미부여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수필제작 과정으로 보아 동기화의 구체화(motivation)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쓸 때에는 반드시 쓰고자 하는『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이 『그 무엇』이라는 중심사상과 말하고자 하는 화제(topic)가 바로 주제가 되는 것이다. 하여간 주제는 수필에 있어서 그 근본이 되는 중심사상이요, 작품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화나 사건들이 주제를 위해서 소도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다시 수필을 구성하는 제요소들과 함께 용해되어 나타나야 한다.

 

2) 주제의 역할

 

그렇다면 문장구성에 있어서 주제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가?

 

① 주제는 소재와 제재를 선택하고,

② 소재와 제재에 대한 배열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며,

③ 언어의 유기적인 통일성(unity)과 긴밀성(coherence)을 유지하여 주면서 조화(harmony) 있는 문장을 이룩하여 준다.

 

방금 말한 바 주제는 소재와 제재를 선택한다. 즉, 주제를 구체적으로 들어내 주는 소재와 제재만을 택한다. 그러므로, 그 주제에 그 소재, 또는 그 제재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또, 주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나기 위해서 제재의 배열에 직접 관여한다. 즉, 이 말은 재료 배열의 순서를 정한다는 말이니, 주제를 중심으로하여 앞에 나와야 할 제재(재료)와 뒤에 나와야 할 제재(재료)를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시켜 준다. 이것이 또한 주제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이다.

 

이와 같이 주제는 제재를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줄 뿐만 아니라, 문장을 조화있게 구성시키는 데 이바지하여 준다. 이렇게하여 주제는 문장의 통일성을 유지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이러한 작업은 그 주제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수필을 쓰는 작자 자신이 하여야 할 작업이다. 그러므로 작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소재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그 필요의 순서에 따라 소재를 배열하면서 문장을 구성하여 가야 할 일이다.

 

3) 주제의 설정요령

 

그런데, 주제는 동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동기 그 자체가 주제는 아니다. 또, 주제는 제재 속에서 더욱 구체화되지만, 그렇다고 제재 그 자체가 또한 주제는 아니다. 또, 주제는 작자가 수필을 쓰려고 하는 의도나 목적과는 관련이 있지만 목적 그 자체도 아니며, 뿐만 아니라, 주제는 작자의 인생관, 세계관, 또는 사상에서 이루어지지만 인생관, 세계관 그 자체만도 아니다. 왜냐 하면, 주제란 구체적으로 수필 속에 형상화되어진 의미이고, 또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제는 작품화의 과정을 거쳐 작자의 인생관, 세계관, 사상이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의 주제와 작자의 인생관, 세계관이 서로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제의 설정요령은 무엇일까? 그것은 작자와 작품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다라고 결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공통적 견해가 있다면, 그것은 가능한 한 선명하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서 참신하고 독창적이면서 자기관조가 가능한 주제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치 있고 유용한 주제로서 자기 경험에서 얻은 구체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주제를 작품 속에 용해시켜가야 한다는 것은 문학수필에서 상식이다. 명확한 주제의 설정은 작문의 스타트가 된다. 주제설정의 기준 다섯 가지를 다음과 같다.

 

① 주제는 되도록 한정되어야 한다.

‘나무’를 그리되, 소설이라면 뿌리, 줄기, 가지를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완벽하게 갖추어 놓음으로써 형상화가 가능하지만, 수필의 경우는 그와 다르다. 가지나 뿌리, 잎이나 열매 중 그 어느 하나를 통해 나무 전체를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제가 한정되면 중심사상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

 

②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고, 자기 힘으로 능히 처리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경험한 그 실체는 창조의 동기가 된다. 수필은 작가의 주변사나 생활일상을 재음미, 재조명함으로써 의미화가 가능한 문학이기 때문에 그 경험을 통한 주제의 선정은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③ 읽는 이도 관심을 갖고 있고, 또 그것을 능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여야 한다. 수필의 내용은 친구와 마주 앉아 격의 없이 나누는 ‘말’과 같아야 한다. 그 말은 문장의 경우에도 해당되고, 주제 설정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④ 이미 정해 놓은 분량, 장수를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⑤ 주제를 들어내는 데 필요한 소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첨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술한 바 참신하고도 독창적인 주제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하여 주제설정은 이것만으로써 전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수필가가 되려면 일차적으로 풍부한 인생 경험과 폭넓은 독서를 통해 다양한 교양 체험을 쌓아야 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 상상력, 연상력, 직감력, 분석력, 추리력, 창조력, 유머감각 등 일곱 가지의 자질도 겸비해야 할 것이다. 이런 바탕과 자질이 겸비되어 있는 다음,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착상법을 적재적소에 능수능란하게 운용할 수만 있다면,주제 찾기의 고민은 어느 정도 해결되리라 본다. 이유식이 말하는 참신한 주제찾기 10 가지 착상법은 다음과 같다.

1) 가설에 입각한 착상

 

가령 석굴암을 둘러 볼 때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대불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왜 대불의 체형이 정신형의 가냘픈 심성질이 아니고 비만형의 영양질일까? 만약 심성질이라면? 이런 가설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해 볼 수 있다. 첫째, 그 당시의 유행적이고 전형적인 불상의 체형이 비만형이라고 한다면,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에서인가? 둘째, 그것을 조각한 석공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천민 계급이었던 석공이 가령 못 먹어서 빼빼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평소에 자기 체형이 비만형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수 있다면 그 욕구 충족의 투영 현상이 그 조각에 형상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해 이런 가설을 세워 상상과 추리를 해나가다 보면 거기에 걸맞는 참신한 주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유사 현상

 

이른바 아나로지에 의한 착상법인데, 자연계를 잘 살펴 보면 그럴듯한 풍부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자연계 이외에도 습관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유럽의 예 또는 다른 소재에서 유사성을 발견해 낼 수도 있다. 가령 공작과 노고지리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어떤 특성을 유추에 낼 수도 있다. 공작은 깃털은 아름답지만 날 수도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는 반면 노고지리는 깃털은 볼품없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날면서 멋진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통해 사람도 신이 부여한 각자 나름의 능력의 한계와 그 장점이 한 가지씩 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하겠다. 가령 문명의 한 현상을 맥루한이 ‘인체확장설’로 설명하면서 눈-망원경, 다리-비행기, 귀-음파탐지기 등으로 확장되었다고 했는데 이 설도 결국은 유추발상에서 나온 아이디어라 하겠다.

 

3) 대비 현상

 

가령 세계의 4대 성인들의 공통점을 비교법을 통해 찾아 보아도 흥미로운 수필적 접근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대조법을 통해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아시아에서는 톱을 당기면서 자르는데 미국에서는 톱니가 반대 방향으로 되어 있어 밀어 내면서 자른다는 사실과 더불어 스푼 사용에 있어서도 미국에서는 밀어내면서 떠올리는데 우리는 앞으로 당기면서 떠먹는다는 사실을 통해 어떤 이치나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4) 의문 착상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는 것이다. 가령 예수의 제자는 12명이라는 데 대해 의문을 가져 볼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유대 민족의 12지파의 대표로 한정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정과 부 대표를 두었다면 24명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왜 여자는 한 사람도 없는가라는 의문을 품어 본다면 그런 착상에서 한 편의 흥미로운 수필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5) 역사고의 착상

 

기존의 개념이나 가치를 정반대로 생각해 보는 착상이다. 수필의 묘미가 역설에도 있는 만큼 이런 착상법의 훈련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자가용의 편리성 때문에 요즘은 자가용 홍수 시대가 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고로 자가용의 불편성이나 위험성에다 초점을 맞추다 보면 <무자가용이 상팔자>라는 수필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또 ‘돈이 많으면 좋다’라는 물질만능시대의 병폐를 꼬집고 한편 떼강도들의 침입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역사고에서 <돈 없음의 행복>이란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역사고법에 착안하여 흥부와 놀부를 두고 이미 흥부격하론이나 놀부변호론이 나왔으며 나아가 소크라테스의 처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악처로 소문나게 된 크산티페를 위해 역사고로 <크산티페 변호론>이 나왔던 것이다.

 

6) 역상식의 착상

 

상식을 뒤엎어서 생각해 보는 착상이다. 이는 역사고의 착상과 비슷하다 하겠는데 상식선에서 노상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바라다 보면 신선한 착상은 절대 떠오르지 않는 법인 만능 상식을 뒤엎어서 다시 생각해 보는 노력도 열심히 하고 보아야 한다.

 

7)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보는 착상

 

가령 가을에 관한 수필을 쓴다고 하자. 고정관념에 매달려 있다 보면 ‘슬픈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독서의 계절’ 중 그 어느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기쁨과 희망의 계절’에다 초점을 맞추어 보면 그런 대로나마 참신한 착상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8) 시점을 바꾸어 보는 착상

 

사물을 관찰할 때 정면관찰도 있을 것이고 측면, 후면, 수직, 수평, 입체 관찰이 있을 수 있듯이 어떤 소재를 택하여 합당한 주제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꾸어서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찰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착상법은 한 우물을 계속 파고 들어 가는 ‘수직적 사고’가 아니라 여러 개의 우물을 동시에 파 보는 것이 물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라는 이른 바 수평적 사고와도 통한다 하겠다.

 

9) 온고이지신 착상

 

낡은 지식이나 낡았다고 생각되는 전통사고나 사상 그리고 낡았다싶은 민속이나 풍속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령 분만시 총각의 붉은 머리 댕기를 복부에 얹어 놓으면 순산한다는 속신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심리적 무통분만설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는 해석이 그 예일 수도 있다.

 

10) 하이브리드(Hybrid)에 의한 착상

 

이 사고법은 이것 저것 서로 다른 이질의 것들을 서로 결합시켜 보는 사고법을 말한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다 전혀 관계가 없거나 혹은 인연이 먼 서로 다른 것들을 끌어들여 둘러 맞추다 보면 새로운 착상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위에서 열거해 본 10 가지의 착상법으로 비록 참신한 주제가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기발하거나 괴벽스러워 보편타당성을 얻지 못한다면 주제로서의 가치성이 없다 하겠다. 참신한 주제일수록 가치성,시대(시기)적인 필요성, 보편타당성,독창성,개성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명작은 어딘가 모르게 남달라야 한다는 얘기는 수필이 어떤 주제로 씌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말해 준다고 하겠다.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보면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낼 수가 없다. 주제를 놓고 주제문을 작성해 보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 예를 들면 『오늘의 물가고』라는 주제에는 『요즈음, 물가는 천정높은 줄 모르게 껑충 껑충 뛰기만 한다. 그렇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생활필수품은 안 살 수도 없는 형편이다』라는 주제문이 나올 수도 있으니 작자가 수필을 쓰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주제문을 한 번 작성하여 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이 주제문이 구체화되었을 때 수필을 쓰고자 하는 의욕이 일어남은 물론, 주제 제시가 뚜렷한 수필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4) 주제의식의 형상화 기법

 

1) 주제의식의 구체화

주제의식의 구체화란 선택된 소재에 대한 자기 해석의 한 방법으로써, 제재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자기화하는 관점이며, 의미부여인 것이다. 주제의식의 구체화는 주제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작업으로써 만약 이러한 주제의식의 구체화 작업이 없으면, 중심사상이 분산 확산되어 수필의 통일성을 해치게 된다.

 

예를 들어 <봄>이란 제재로 수필을 쓸 때, 주제의식의 구체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소생', '희망', '사향', '회고' 등 유사한 사상이 인접 내통함으로써 주제를 분산시킬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의식의 구체화는 '소생'이면 '소생', '희망'이면 '희망' 어디까지나 어느 하나로 집약되고 응축되어야 한다.

 

나도향의 “그믐달”을 보자. 이 글의 주제는 ‘고독’이다. ‘고독’이란 주제를 살리기 위해 작가는

“ 그믐달은 가슴이 저리도록 쓰리고 가련한 달이다.”

“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 그믐달은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과 같은 달이다.”와 같은 문장으로 의식의 구체화를 이루었다. 아무리 값지고 귀한 주제라 해도 그 의식의 구체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문학수필이 될 수 없다.

 

2) 주제의식의 의미화

의미화란 주제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자기화의 수법이다. 쉽게 말해서 작가 나름의 눈으로 주어진 제재를 이해하는 마음인 것이다. ‘부는 바람’을 ‘인생’에 비유하고, ‘흐르는 물’을 ‘덧없는 세월’로 보는 것이 일종의 의미화다. 예를 들어 낙엽을 제재로 하여 주제의식을 추출, 그 사상을 구체화한다고 할 때, 우리는 ‘조락’의 의미로서 ‘이별’ ‘허무’ ‘방황’ ‘절망’ 등으로 의미화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화는 정서의 자기화로 볼 수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우리는 그 낙엽의 의미를 개성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데, 먹히다 남은 그 반쪽마저 벌레에게 깨끗이 주고 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지금 그 낙엽이야말로 아쉬워 하고 있다는 ‘헌신’의 정신으로 의미화할 수 있다. 의미화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서의 표출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상을 보고 느낀 정서를 생활일상에 역류시키거나 여과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솔직한 자기 관조 또는 반조로 나아가야 한다. 오창익의 “해당화”는 주제가 ‘열애’인데. 작가는 바다 건너로 멀리 떠나간 임을 그리는 여인을 해당화에 비유하고, 그를 기다리는 지친 여심을 비바람에 진 빨간 꽃잎으로 의미화하여 “30대 여인의 각혈”이라 하였다. 권대근의 “고향”은 주제가 ‘그리움’인데, 고향을 편지 속에 담긴 그리운 이의 손짓에 비유하여 주제를 의미화하였다.

 

3) 주제의 상상화

주제의 상상화는 주제의 효과적이고도 원활한 의미전달을 위해 중심사상을 문장으로 상상처리하는 일이다. 이는 주제를 구체화를 도와 문학성을 더하는 작업으로 그 전달방법은 상징, 비유, 암시, 함축, 생략 등이다. 즉 구체화된 주제의식을 상상적으로 문장화해야 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청춘예찬”을 보자. “이상! 빛나고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로 사상의 구체화를 도모하고 말미에 “그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의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에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그것은 웅장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이다. 뼈 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의 소리다.”라는 비유일색의 문단으로 중심사상을 상상처리한다.

 

7. 수필의 구성

 

1) 구성의 작업

 

여기에서 말하려는 구성은 구상과도 일맥 상통되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작품구상이라는 말을 곧잘 쓴다. 구상(구성)이란 문장을 만들기 전에 즉 수술로 들어가지 전에 무엇을 어떻게 써 갈까, 머리말은 무슨 말로부터 시작하며, 문체는 간결체로 할 것인가, 아니면 강건체, 건조체 또는 서간체, 일기체로 할 것인가, 본론은 어떻게 끌고 가며, 끝맺음은 무슨 말로 맺을 것인가 등, 이른바 문장구성상에 있어서 사전에 구상하는 작업을 말한다. 착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 역시 구상에 속하며 제재, 주제를 결정하고 줄거리(outline)를 짜는 일이다. 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줄거리를 짜는 작업이다. 그 의미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다음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우리가 집을 짓기 위해서 먼저 있어야 할 것은 땅이다. 그러나, 땅이 있다고 해서 곧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양옥으로 지을 것인가, 한옥으로 지을 것인가 또는 단층으로 지을 것인가, 이층으로 할 것인가, 건축재료는 블록을 쓸 것인가, 벽돌을 쓸 것인가 등의 구상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구상작업이라고 한다면, 그 구상작업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가 짓고 싶은 집에 대한 어떤 설계가 작성되어야 할 것이다.

 

건평은 몇 평이므로 방은 몇 개이며, 욕실은 어디로 정할 것이며, 서제, 거실은 어디에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창문은 몇 개에 대문은 어떤 양식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 등 집을 짓기 위한 하나의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설계가 바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작자가 작품을 창작하는 목적은 작자의 어떤 사상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전달할 바에는 올바르게 전달하여야 한다. 주제를 가장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재를 적절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된 그것들을 잘 꾸며 가야 한다. 그러므로, 구성이란 제재를 선택하여 그것을 주제에 어긋나지 않게 배열하고 결합시키는 작업이다. 즉, 수필형성에 있어서는 유기적인 조치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주제를 음식물의 맛이라고 한다면, 소재는 일반재료요, 제재는 그 음식물을 만드는 데 있어 필요불가결한 주요 재료인데 구성은 재료를 어떻게 배합하여야만이 목적한 음식물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그 배합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전술한 바 건축에 있어서의 설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2) 구성의 종류

 

수필구성의 종류는 사람에 따라 분류 기준이 다 다르나, 본고에서는 네 종류설을 근거로 하여 설명하겠다.

 

(1) 단순구성(Simple plot)

 

단순구성이란 말 그대로 그 구성이 단순한 것을 말한다. 즉,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 꾸며진 수필이다. 이야기가 하나밖에 없으므로 내용 진행이 단순하며 수필의 주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반면에 잘 못하면 독자들에게 너무 단조로운 감을 주기 쉽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필은 이 단순구성을 택하고 있다. 이 구성법으로 수필을 쓰면 첫째 독자에게 통일된 인상을 준다.

20년이 넘도록 학교의 교사 노릇을 해 오는 내가 한결같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점수를 정하는 일이다. 과연 이 점수는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갖게 되는 것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채점하던 펜을 멈추고 멍하니 나도 모르게 앉았던 때가 적지 않다. 대학에는 60점 이상이라야 학점을 받게 되는데 59점과 60점의 차이는 비록 그것이 한 점의 적은 차이지만 그 한 점의 중요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중략)

나의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나와 남달리 의좋게 지내는 친구인 P가 평균 80이 넘는 우수한 성적인데 기하가 39점이라 할 수 없이 낙제를 하였다. 기하의 학과 담임 선생님은 일본 사람으로 박박 깍은 머리가 허옇게 생긴 키 작은 노인이었다. 참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분으로 여러 학생들이 마음 속에 두려워 존경하는 분이었다. 더구나 작은 키에 칠판 글씨를 유난히 많이 쓰는 관계로 바른편 어깨가 치켜져 올라가 몸이 끼우땅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유달영 , 명작 < 39점 >

39점이라는 점수를 놓고 인간의 성격의 극단적인 일면을 보여준 수필이다. 시종여일 <39점>에 관한 이야기가 그 주조를 이루고 있어 단순구성으로 볼 수 있다.

 

(2) 복합구성(Intricate plot)

 

복합구성이란 두 개 이상의 이야기를 합쳐서 쓰는 수필을 말한다. 복합구성에는 주가 되는 이야기가 있고, 이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대개의 경우 부수적인 이야기는 주가 되는 이야기, 즉 주인격인 이야기를 강조해 주는 일을 한다. 이 복합구성은 장편소설, 단편소설에 많이 쓰여지고 있다.

 

한편 복합구성은 수필 <청추수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버러지>, <달>, <이슬>, <창공>, <독서> 등 이렇게 토막토막의 생각을 엮어서 한 편의 수필로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1) 지구의 6개 대륙들 중 남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만 빼놓고 4대륙에는 내 발자국을 남겨 놨다. 내가 열 살 나던 해 여름 아버지를 따라 일본 도쿄로 가 한달 가량 살고 온 것이 나의 해외여행 시초였다. 그 뒤에도 도쿄에 5,6차례 잠시 들르곤 했다. 그러나 교도와 나라와 오사까는 금년 6월에 대만가는 길에 5일간 들러 관광한 것이 처음이었다. (중략)

 

2) 1949년부터 자유 중국의 영토가 된 대만에도 5차례나 다녀왔다.

3) 중국 상해 호강대학 출신인 나는 동문들 만나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4) 미국문화는 콜라, 한국문화는 다방이라는 역설이 유행하고 있었다.

5) 금년 6월에 내가 참석했던 제 3차 아시아작가회의에서의 소득은 세 가지가 있다.

 

이 수필에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이야기가 합해져 있다. 이 수필에서 주인격을 이루고 있는 것은 1)이요, 기타 2), 3), 4), 5)는 1)의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한 부차적인 일을 하고 있음을 본다. 즉 사대륙의 여행기를 위해서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3) 산만구성(Loose plot)

 

산만구성은 그 자의가 말해 주고 있는 그대로 일정한 계획이 없이 써가는 글이다. 즉, 줄거리의 진전이 산만할 뿐만 아니라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써 가는 수필이다. 김진섭은 수필을 일러『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하였거니와 이 견해에 따른다면 수필이란 산만구성이 되기 쉬운 글이라 할 만하다. 왜냐 하면, 얼핏 보기에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다리인지 분간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하여 무질서하고 혼돈한 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무질서 속의 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수필이라 할 수 있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수필로서의 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 맵씨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부멘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오, 서른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 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하니 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 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야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 얼굴에 미소를 띄우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 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 간에 쓰는 이의 득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기분)에 따라『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트나 크라이맥스를 필요하지 않는다. 필자가 쓰고 싶은 대로 써가는 것이 수필 행로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이 이 문학은 그 차가 방향을 갖지 아니 할 때에는 수도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이다. 소설가나 극자가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된다. 세익스피어는 헴레트도 되고 홀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찰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가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는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지일까지도 수째 초조와 번잡에다 주어 버리는 것이다.

- 피천득 <수필>에서

 

이 수필은 얼핏 보기에 아무런 계획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쓴 글처럼 보이기 쉽다. 말하자면 산만한 구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수필을『붓 가는 대로』『느끼는 대로』『생각 하는 대로』써 가기 때문에 그 구성이 산만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산만한 구성을 이루면서도 그 속에 형식이 있고 논리가 있는, 말하자면 산만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여 가는 글이다.

 

(4) 긴축구성(Organic plot)

 

긴축구성은 마치 틀에 박은 듯 꽉 짜여 있는 구성을 말한다. 그 때문에 수필은 처음부터 끝가지 빈틈없는 유기적인 연결을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유기적인 연결은 질서정연한 구성미를 보여 주기까지 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주제를 나타냄에 있어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구성의 완미를 보여준 글이기도 하다.

 

1) 십대소년이 또 네 사람을 칼로 찔러 그 중 두 사람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서울에서 일어났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이른바 부산 신혼부부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십여 일 만에 다시금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2)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번 부산신혼부부살해사건이 일어났을 때 청소년 범죄가 근래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고 있는 사실이 크게 문제가 됐던 것을 기억한다.

 

3) 이번 사건은 지난 번 부산 사건과는 달리 그 동기가 다니던 공장에서 쉐터를 훔친 것이 이유가 되어해고를 당한데 대한 앙갚음이 동기가 됐다고도 전한다.

4) 이 점 최근의 이 두 사건은 오늘날 일부 철부지 십대들이 스스로의 욕구불만을 발산시키기 위하여 얼마만큼 쉽사리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 좋은 표본이라 함은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5) 이에서 우리는 이제 이러한 일부 십대가 위험한 십대를 넘어서서 무서운 십대로 화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가 있으며,

6) 대체 어디가 무엇이 어떻게 잘못돼 있기에 이처럼 청소년범죄가 증가를 거듭하고 날로 흉악상을 더해가는 것일까.

7) 지난번 부산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역시 각계로부터 각가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음을 본다.

동아일보 <청소년범죄의 흉폭화>

 

이 신문 기사는 서울에서 일어난 청소년의 살해 사건을 부산에서 일어난 신혼부부살해 사건과 연관시켜 더욱 흉폭화되어가고 있는 청소년 범죄의 실상을 고발하는 글이다. 1)에서 2), 3)으로 연결되면서 이어지는 단락의 전개가 빈틈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 구성의 기본형

 

전술한 바와 같이 구성이란 제재를 주제에 어긋나지 않게 배열하고 결합시키는 일, 즉, 문장구성에 있어서의 유기적인 조직법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인체의 경우, 머리가 있고, 가슴, 배, 팔, 다리가 있어야만 하나의 인체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유기적인 조직을 의미한다. 그러한 조직을 효과적으로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수필을 구성하는, 즉 재료를 배열하는 여러 가지의 기본적 패턴을 터득하여 두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이 기본적 패턴을 구성의 기본형이라고 한다. 구성의 기본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배열식적 순서형

문장작법상 필요한 재료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편의상 다음의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시간적 순서형과 공간적 순서형, 논리적 순서형과 이념의 순서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순서라고 하는 것은 묘사나 서술의 순서를 지배하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유의할 것은 한 편의 작품이 꼭 한 가지 질서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편의상으로 기본 구성형을 나눠 본 것이다. 이는 얼마든지 혼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① 시간적 순서형

 

어떤 대상을 시간적 순서를 따라 서술하여 가는 것을 시간적 순서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일단 시간을 흐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은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시간의 흐름에 그대로 따르는 구성, 둘째는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구성, 셋째는 현재에 서 있다가 과거를 다녀오는 구성 등이 그것이다. 시간의 순서는 과거 현재 미래 어제 오늘 내일 아침 낮 저녁 순으로 진행된다. 그 한 예문을 들면 다음과 같다.

 

4일에 걸친 폭우가 겨우 그치고 오래 피신하였던 태양이 다시 위용을 내 놓았건마는 찌는 듯한 무더위가 오히려 사람을 열살, 뇌살치 아니하여 마지 아니하려 하는 7월 20일이었다. 밤이 되어도 완화되지 아니 하는 답답한 열압이 암만하여도 심상치 아니 하여 서투런 무당이 궂은 일에는 맞추는 것처럼, 상해 방면으로 동진하는 저기압이 무운서 호우를 가지고 온다하던 측후소의 예보가 반갑지 아니한 이 일에만 어쩌다 맞을 듯도 하다.

 

이은상의 <백두산참관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수일에 걸친 비가 그치고, 태양이 얼굴을 내민 7월 24일, 그 날밤이 되어도 완화되지 않는 답답한 열압이 내려누르더라는 것 등은 모두 시간적 순서에 따를 것이다.

② 공간적 순서형

 

대상을 공간적 순서를 따라서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어떤 풍경을 일정한 방향의 순서에 따라 표현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밑에서 위로, 좌에서 우로, 동에서 서로 또는 남에서 북으로 등 이러한 순서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수필가가 묘사하려는 대상, 서술하려는 행동, 이런 것들은 모두 공간 속에 위치하거나 거기서 진행된다.

 

정비석의 <산정무한>은 소재가 공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순서에 따라 수필을 써 가고 있음을 본다. 즉 철원의 금강전철에서 내금강역, 청계, 문선교, 장안사 등 행로의 순서를 따라 전개하여 이어가고 있다.

 

부평으로 가는 만원 전철 속, 오른쪽에는 한 사람 건너 국민 학교짜리 셋(5,6학년쯤 돼 보이는)을 데리고 중년 여인이 서 있고, 왼쪽에는 미취학짜리의 손을 잡은 30대 부부가 서 있다.

영등포 역에 닿자 내 앞 좌석에서부터 왼쪽 30대가 서 있는 곳까지 서너 사람 몫의 자리가 났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이 빠져 나오기도 전에 구경거리 하나가 벌어졌다.

부평 역 광장에 내려서자, 때마침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뉴스가 가라앉지 않은 속을 다시 뒤집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부평으로 가는 만원 전철 속』은 작가의 출발점, 아마 서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공간적 변화는『서울 영등포 부평』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이것은 공간적 질서에 일치함으로써 독자의 사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시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은, 잠깐 그 질서를 깨뜨림으로써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은 그것이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만일, 공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에 있어서 그 질서가 깨어지면, 독자에게 남는 것은 혼란뿐이기 때문이다.

 

③ 논리형 순서형

 

문학 작품은 본래 논리를 추구하는 문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서는 특수한 효과를 위한 의도적인 파괴가 아닌 이상 논리에 어긋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논리적 구성이라고 하면, 인과 관계에 따르는 구성, 연역적 구성과 귀납적 구성 같은 것을 연상하게 된다. 이 밖에도 더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이 한가지만 고찰해 보기로 한다.

 

인과 관계에 따르는 구성은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하나는 『원인 결과』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 원인』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들은 한 작품의 전편을 지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문단 문단에 나타나는 것이 현저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을 타는 것도 아닌데 여름 밥상엔 가끔 입맛을 잃곤 한다. 상치쌈이나 풋고추 된장찌개도 몇 날 몇 끼니지, 한 철을 내내 이것들에만 입맛을 맡길 수는 없다. 짭짤한 젓갈이나 장아찌 등 밑반찬이 더러는 입맛을 돋구어 주기도 하지만, 이것들도 끼니마다 줄대어 먹게끔 식성이 풀려 있지 않다.

 

작금년에 들어 바닷가 출신의 안식구는 집안 밥상머리에서의 민망함을 덜기 위해서 생각해 냈음인가, 망둥이라는 건어물을 가끔 상 위에 올려 놓는다. 그 때마다 친정의 오빠에게 부탁하여 구해 온 것이라 했다.

 

이 인용의 첫째 문단은 입맛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 문단은 그래서 망둥이가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째 문단은 망둥이가 등장하는 원인이 되고, 둘째 문단은 입맛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가 되는 셈이다. 즉, 위의 인용은『원인 결과』의 방식을 취한 구성인 것이다.

 

(2) 병열형

 

시 공간의 순서를 밟지 않고 소재를 단위별 또는 항목별로 배열하여 서술하여 가는 방법을 말한다. 소재에는 시간성과 공간성이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것도 있다. 시간성 공간성의 순서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단위별, 항목별로 서술하면 그것 또한 나열형이 된다. 어떻게 배열하여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작자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

정지용의 <석류, 홍시, 유자>는 병열형의 서술이다. 석류, 홍시, 유자 하나 하나 단락을 이루면서 나열되고 있다. 시간적 공간적 순서에 구애받지 않는 서술형이다. 그렇다고 순서를 바꾸었다고 하여 시간적 공간적 연속성이 무시된다거나 논리적 순서가 비약된다거나 하는 염려가 없다. 바로 이것이 병열형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기순의 <주름살>도 병열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주름살’은 삶의 발자취를 상징하여 준다. 곧 삶의 악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름살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나름대로 인생을 해석해 보고 있는데, 할머니의 주름살, 고생의 흔적을 보여주는 주름살, 학자의 주름살 등 인생의 주름살을 병열식으로 다루고 있다.

 

(3) 삼단형

 

일에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맺음이 있다. 이러한 삼단의 순서를 밟아 서술하여 가는 것을 삼단형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글이나 덮어놓고 삼단으로 나누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삼단형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작과 중간, 끝의 삼단이 시종 논리적인 단계를 맺어 가면서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글감을 모았다면, ‘우선 세 동아리로 묶어 놓고서 쓴다’는 원칙을 초심자들은 비결로 간직할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에는 처음, 중간,끝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삼단형의 구성이다. 다만 문학의 장르나 문장의 종류에 따라 그 이름이 달리 쓰일 뿐이다. 이대규 부산대 교수는 수필의 구성상 특징을 구조로 보고, 세 단위로 나누어 첫째 단위는 발단이고, 둘째 단위는 전개이고, 셋째 단위를 결말로 이름짓고 이 기본 세 단위를 갖춘 수필을 기본형 수필이라고 하였다. 형식이 자유로운 수필의 특성상 모든 수필이 발단과 전개 그리고 결말로 이어지는 삼단 구조로만 쓰여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중에서 한 단위 또는 두 단위가 빠진 수필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발단이 없는 경우, 결말이 없는 경우, 발단과 결말이 빠져서 전개만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런 수필을 변형 수필이라고 하였다.

 

시골 부잣집의 주인영감 생일이 다가오자, 그 집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회의를 열었다. 누가 잔치상에 오를 것인가를 토론하기 위해서다.

제일먼저 입을 영 것은 소다.

“지금은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니 설마 나를 잡지는 않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말이 말했다.

“주인은 언제나 나를 타고 다니지. 아무리 주인이 바보라고 해도 나를 잡아 먹고 걸어다니지는 않겠지”

한동안 말의 얘기를 듣던 양이 말했다.

“나는 곧 새끼를 낳아 주인을 돈 벌게 해 줄거야. 주인은 내 젖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며 털까지 깍아 팔아 돈을 모으는데 나를 잡겠어?”

암탉이 꼬꼬대며 수다를 떤다.

“나는 알을 낳고 병아리를 까서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데 나는 예외야”

먼 산을 바라보던 개가 입을 연다.

“나는 주인을 위해 밤새워 도둑을 지킨다. 내가 없으면, 이 집은 도둑들이 들끓을걸”

이때 돼지가 한숨을 쉰다.

“죽을 놈은 나밖에 없구나”

기업들이 어렵다. 어렵다 보니 감원선풍이 불어온다. 이럴 때 너나없이 전전긍긍하게 된다. 혹시 내가 대상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상헌 , <정년 이후>

 

(4) 사단형

 

사단형은 서론, 설화, 논증, 결론 등으로 나누어진다. 한편, 기승전결형이라고도 한다. 사단식 짜임은 문장의 유형에 따라 단걔별 이름을 달리 하는데, 한편 사단법은 소설구성에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Forster - Harris는 『소설의 기본공식』에서 ① situation ② complication ③ crisis ④ climax 등을 들고 있는가 하면, 또한 다음의 사단계를 들기도 한다. 수필 구성법에 쓰이던 틀은 ① 발단(exposition) ② 전개(development) ③ 절정 climax ④ 해결(resolution)의 구조라 할 수 있다.

이 기승전결의 사단형은 당나라때 완성된 시형식으로서 한시, 가요, 시, 동시의 구성법에 많이 쓰이고 있다. 글자 그대로 <기> 들어가기, <승> 풀이하기, <전> 굴리기, <결> 마무리 수법이다. 이 구성의 특징은 <전>에 있다. 의표를 찔러 참심함을 안기고, 흥미나 기지, 유머가 넘치는 <결>로 매듭짓는다. 변화로운 구성이요, 전개의 의외성, 문장 개성의 돋보임을 특징으로 한다.

 

이 구성법은 소설, 희곡의 4단계 즉 발단, 전개, 정점, 결말과 맞먹는다고 보겠다. 어느쪽도 전체에 변화와 긴장을 곁들이고, 흥미,인상을 안겨 내용을 깊게 하고 운치롭게 해야 하는 구성법이다. 이런 만큼 실용문, 논문 따위에 적용하기엔 특단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곧 <전>의 대목은, 단락을 뚜렷이 구분하여야 하여 내용이나 잣수도 가늠해야 하고, 전체의 균형도 묘미도 곁들여야 하고, 재미를 북돋우어 깊은 인상을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를 당황하게 하지 않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신이 없을 땐 삼단 구성으로 복귀해야 할 것이다.

 

이 구성법은 경험적 수필에 많이 쓰인다. 다음의 한 편은 이 구성법으로 효과를 거둔 예라고 할 수 있다.

 

대전 어느 교사들이 모임에서 법문을 하고, 늦은 시간 대구역에 도착했다. 훌륭한 법문을 설했다고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택시를 기다리는데 살며시 팔장을 끼는 손이 있었다. “스님, 쉬었다 가세요. 잘해 드릴께요” 선뜻 거리의 여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역겨운 감정이 솟아, 팔을 뿌리치려고 손을 빼는 순간, 그녀의 모습에 외롭게 사는 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뿌리치려던 손을 내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엉거주춤 끌려 가고 있었다. 중생의 아픔을 넓은 가슴으로, 묻어 줄 수 있는 스님의 모습도 아니고, 껄걸 웃으며 등을 한번 어루만져 줄, 큰 가슴의 사내도 아니었으니...... 그저 자기 방어에 전전긍긍하는 ,못난 사내의 모습이었다.

 

아픈 중생과 하나될 수 없는 스님이라면, 도를 통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초라한, 참으로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 또 다른 자신은 커다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 잘해 드릴께요” 침묵을 깬 그녀의 말. 그 말이 왜 그리도 서럽게 들렸던지. 팔짱 낀 그녀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처녀, 큰스님 되면 올게. 꼭 큰스님 되어 올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 너무 진지한 나의 모습에 두 손 풀어 가슴에 모으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의 눈망울으, 지금도 수행의 채찍이 되고 있다.

석용산 , <어느 스님의 참회>

 

“큰스님 되면 올게. 꼭 큰스님 되어 올게” 서너 마디 말이, 읽을이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선을 범하고 난 다음의 불쾌보다 참고 난 다음의 쾌감을 택하라던, 성에 대한 어느 가르침은, 차라리 수준 낮은 언어의 장난이것다. <전>에 도사린 ”구성의 묘미‘ 절정적으로 맺힌 대사가 주제와 더불어 더없이 묻어 오게 한다.

 

(5) 오단형

 

5단형 짜임에는 크게 6 가지가 있다. 첫째, 소설, 희곡 등에 많이 사용된 구성법으로서 그 내용을 보면, 발단, 갈등, 위기, 정점, 결말로 이어진다. 둘째, 3단락법의 변형으로, 독자와의 접촉, 제목의 소개, 논지의 제시, 주제의 전개, 맺음이다. 셋째, 희랍의 변론술형으로 도입, 진술, 증명, 반론, 결어다. 넷째, 중국의 산문구성형으로 기, 승, 포, 서, 결이다. 다섯째, 음악의 소나타형으로 전주, 제시, 전개, 재현, 종결이다. 이는 삼단형이나 사단형을 더욱 짜임새 있게 구분한 것이라 하겠다. 한편 문덕수는 그의『신문장강화』에서『5단형은 동기부여의 순서에 따라 재료를 배열하여 서술한 문장의 패턴』이라고 전시하고, 다음의 오단계를 들고 있다. 여섯째 구성법이되겠다.

① 접촉(주의를 이끄는 단계)

② 주장의 제시(문제를 제시하는 단계)

③ 논증의 명시(문제해결법을 제시하는 단계)

④ 논증의 전개(구체화의 단계)

⑤ 요약과 강조(행동에 유도하는 단계)

 

여기서는 3단법의 변형인 5단 구성법을 예로 들겠다.

 

징글벨소리가 울려 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공연히 들뜨게 되고, 걷는 걸음걸이도 바빠지게 마련이다. 백화점에는 선물을 사려는 인파가 2몰리고, 깜빡이는 네온사인 아래로 눈을 맞으며 걷는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신세계 백화점 앞을 지나다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구세군이 자선냄비 앞에서 열심히 종을 흔드는데, 한 스님이 지나가다 그 옆에 자리를 깔고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업무방해를 해도 분수가 있지.....”하면서 그냥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스님 앞에 돈을 놓고 가기도 했다. 진눈깨비가 내리고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스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불경을 외우고 있는 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스님 앞에도 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스님은 그 돈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자선냄비 앞으로 가 모두 그 속에다 넣고 합장을 한 다음 어디론가 총총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님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죄송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부지런히 그 스님의 뒤를 좇아가 말을 걸었다.

“스님, 바쁘지 않으면 차라도 한잔 하면 어떨까요?”

스님은 빙그레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옷은 진눈깨비 때문에 흠뻑 젖어 있었고, 아무래도 따끈한 차라도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방에 들어가자 얼마 안돼 그의 옷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기 시작했다.

“스님, 열심히 시주돈을 받아 왜 자선냄비에 넣으셨습니까. 그냥 가지고 가시지...”

“내일이 크리스마스 아닙니까? 그래서 나도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스님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부처가 따로 있습니까? 그래서 나도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부처가 따로 있습니까? 예수가 부처고 부처가 예수지요.”

나는 그 스님과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내 마음도 활활 타오르는 난로처럼 훈훈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상헌 , <스님의 자선냄비>

 

위 5단 구성법은 원래 논설문 따위 이론적 문장에 썼던 양식이다. 제 3,4단락은 이 글 사건의 중심이고 ,제5,6단락은 그 사건에 대한 해설, 감상에 해당한다. 주제문인 “부처가 따로 있습니까? 예수가 부처고 부처가 예수지요”로 귀결지은 맺음의 기법도 능숙하거니와 “업무방해를 해도.......”의 위기스런 대목은 맺음에의 복선을 예비한, 치밀한 구상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7) 기타

 

이상에서 말한 것 외에 문덕수는『신문장강화』에서 다음의 형을 들고 그 예문을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이 단락 위주의 구성법이라면 다음에 말하는 것은 주제문 중심의 분류가 될 것이다. 즉 두괄형과 미괄형, 양괄형, 중괄형이 바로 그것인데,『두괄형은 그 문장의 토픽 센텐스가 서두에 있는 것이요, 미괄형은 토픽 센텐스가 결말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어『토픽 센텐스가 서두와 결말 즉 앞뒤에 다 있는 것을 양괄형』,『토픽 센텐스가 문장의 중간에 있는 것을 중괄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8. 수필의 길이

 

글의 길이를 가지고 장르의 형식적 특질을 파악한다는 것은 다소 저항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장르마다 글의 길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장르의 특질적인 것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여기서는 한국현대수필문학의 길이에 관해서 생각해 보고, 이것을 다른 장르의 그것과 간단히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 역시 우리 현대수필문학의 특질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 나라의 현대수필문학을 검토해 보면, 그 길이가 13매 내외인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4~5매, 또는 30매 정도의 것도 있으나 이것은 예외적이다. 또 장편수필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논의하는 수필과는 다른 쟈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논의하는 수필이 단편소설에 대응된다면, 그것은 장편소설에 대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논의하는 수필과 장편수필이 전혀 별개의 장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그럼, 다시 주제로 돌아가 보자. 수필이 13매 내외의 길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즉, 수필의 어떤 특질을 나타내는 것인가?

우선 이 길이를 시간으로 환산해 보자. 13매 내외의 길이를 말하듯이 읽어 보면 약 6분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만일, 수필문학의 길이를 좀 넉넉하게 잡아서 10~20매 정도로 본다면, 시간은 5~10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6분 내외의 시간, 좀더 넉넉하게 잡아서 5~10분이라는 시간, 이것은 어떤 데 알맞은 것인가? 이것은 어떤 사건을 여유 있게 전개시키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이다. 대사나 동작으로 어떤 사건을 드러내 보이기에도 물론 태부족한 시간이다. 이 시간은 인생의 한 단면을 표현하는 데 알맞은 시간이다. 또는, 어떤 본질적인 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하거나 암시하는 데 알맞은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이 짧다고 하여 한 편의 수필이 하다 만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도 물론이다.

 

그렇다면, 수필문학이란 결국 5~10분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에, 인생의 한 단면을 표현하거나 어떤 본질적인 것을 지적 내지 암시함으로써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한 편의 완결된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길이의 제한 때문에 내용이 이렇게 된 것인지, 내용이 이렇기 때문에 길이가 이렇게 굳어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것은 장차의 연구 과제라 하겠다.

 

 

출처 : 신재기문학강의
글쓴이 : 유판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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