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수필을 쓰고 누가 수필을 읽을까?
누가 수필을 쓰고 누가 수필을 읽을까?
<수필 카페답게 수필 토론이 펼쳐져 반가운 마음에 저도 한마디 합니다>
수필을 쓰면서 스스로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글만, 이런 방법만으로 써야하나? 이런 생각을 더러 했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은 나만의 고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온갖 실험적 방법을 시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수필문학이 어디로 가야하고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시대마다 사회마다 견해와 취향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중수필과 경수필의 문제도 그렇고, 수필의 문학성 문제도, 허구성 문제도, 신변잡기 논란도 그렇습니다. 아직 수필에 대한 이론이 덜 확립된 요인도 있겠으나, 앞으로 이론이 확대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문제는 단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작가와 마찬가지로 독자 또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에서 수필을 어느 한 쪽만 옳다고 주장하는, 특히 고전적 보수적 이론만으로 고집하는 것은 힘든 현실인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모든 사람이 작가(글 쓰는 사람)처럼 활동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저는 수필가의 등단을 대부분의 경우, 본격적인 글쓰기를 취미 생활로 삼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젊어 살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 이제 아무나 축구도, 야구도, 댄스도, 발레도, 노래 취입도 하는 세상이 되었듯이,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쓰고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고, 되고 있고, 확실히 될 것입니다. 그런 현실과 미래 세상을 생각한다면 장르의 경계도 장르의 본질적인 성격도 분명히 변해갈 것입니다. 아니, 변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허구성 도입 문제도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본질적 진실을 위반하는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등) 정도가 아니라면 할 수 있어야 보고, 신변잡기가 수필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수필작가들이 모일 때마다 특히 소위 원로 수필가들이 새내기 수필가를 꾸중하듯 합니다만, 신변이야기가 재미든 감동이든 문학적인 향기를 내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나무라는 분들이 발간한 수필집 제목이나 대표작이 신변적인 작품이 매우 많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 자신의 아픈, 슬펐던 과거의 삶과 눈물이 있기 때문에 작가로서는 가장 잊을 수 없는 소재이고 아끼는 이야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과거부터 써오던 이런저런 수필이 좋은 수필이라는 규정에서 벗어나서 마음껏 즐겁게 쓰는 수필문학 시대를 함께 향유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쓰는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게 쓰고 독자도 어떤 부류의 글이든 부담 없이 읽고 즐기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수필집보다는 가벼운 신변잡기가 많은 <좋은 생각> 같은 책이 훨씬 많이 읽힙니다.
또, 지금까지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금기처럼 되어 왔고, 작가의 아픈, 슬픈, 가엾은, 불쌍했던, 실패한 이야기 등을 보여주면 좋은 글이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이것도 바뀌어야 할 시대입니다. 이제 과거와는 달리, 불행한 체험보다는 행복한 체험이 더 많은 세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행복한, 즐거운, 좋은, 기쁜, 신나는, 자랑스러운 이야기도 솔직하게 재미있게 신나게 재치 있게 써서 보여 주면서 함께 즐거워하고 박수 쳐 주고 웃고 행복을 느끼는 그런 분위기도 우리가 그렇게 금기시 할 일도, 시대도, 사고방식도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삶의 질이 좋아지고 삶의 가치관이 변해가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좋은 것 보고 웃길 바라지, 자신의 일이든 남의 일이든 골치 아프고 슬픈 일은 싫고 아픈 이야기도 듣기 싫어합니다.
문학성만 따지면 독자층은 한계가 있습니다. 예술성이 있다고 규정하는 영화든 음악이든 그림 등도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지가 한참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자꾸 따져서 글 쓰는 사람들, 특히 글쓰기 시작하는 위대한(?) 작가들을 스스로 주눅 들게 하고 팬을 들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겁고 행복한 글쓰기를 하는 시대가 오리라 믿으며 또 오길 기대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앞서가는 작가이고 글 쓰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쓰다보면 문학성(?) 있는 명작도 나오고 나만의 명작(?)도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원론적이고 보편적인 수필 이론은 이렇게 규정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면서 말입니다. 이광수의 <무정>을 보고 가슴 설렜던 1920년대 독자가 있었지만, 지금 우리 세대가 보면 별로 흥미 없지요. 저 같은 세대는 옛날 방인근 소설을 몰래 숨어 보며 즐거움을 느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것도 시시하다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듯이 독자도 변하고 있으니, 작가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드린 말씀입니다. 어허, 연애나 많이 해 봤더라면 연애 수필 시리즈나 써서 출판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려나?
이상, <광수 생각>이 아닌 <우선(羽仙)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토론과 견해를 기다립니다-






서혜정 님의 생각에 대해 도움이 될가 싶어 나름의 견해를 밝힙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정말 옳은 생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만 해도 우리의 미셀러니 형식을 수필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 나라에서 말하는 에세이스트 곧 수필가는, 지성에 바탕한 중수필을 쓰는 작가를 지칭합니다.
여기엔 분명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나름의 판단으로는 수필이 단순히 자신의 경험만 가지고 써서는 높은 격조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발표되는 수필 작품들을 읽어보면 독서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경수필 1편을 쓰기보다는 중수필, 그것도 반듯한 중수필 한 편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중수필에 무게중심을 두는 경향으로 바뀌어 가야 옳다는 것이 나름의 생각입니다. 아울러 독자들 역시 중수필을 더 나은 수필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댓글 2 0 → 서혜정 님의 견해에 대한 답'); return false;" href="http://cafe387.daum.net/_c21_/bbs_read?grpid=dEwd&mgrpid=&fldid=CZpH&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fw000fzzzzzzzzzzzzzzzzzzzzz&datanum=2603&listnum=20#">신고 인쇄 스크랩(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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