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본질/자기의 발견
(문학의 본질)
2. 자기의 발견
부부가 아닌 남녀가 한 방에서 잘 수밖에 없는 사정이 되었다. 여자가 성경책을 꺼내 놓으면서 제안 겸 경고를 했다. "만약 밤중에 이 성경책을 넘어오면 짐승이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잠이 들었고, 정말 아무 일이 없이 날이 밝았다. 잠을 깬 여자는 방을 나가면서 내뱉는 말, "짐승만도 못한 인간!"
멋대로 해석해도 좋다. 그렇지만 이 얘기 속에는 인간의 내밀한 욕구에 대한 시사가 암호처럼 깃들여 있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는 아무런 교훈을 주지 않는다 해도 좋고, 그저 지나가는 저잣거리의 우스갯소리 정도로 여겨도 상관없다.
그러나 우리의 화제와 관련해서, 언어는 어떤 것이든지 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흔히 우리는 정보적인 언어라고 하면, 신문에 나는 사건 기사거나 증권 시세의 변동 같은 것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거기에는 정보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정보는 표피적이고, 따라서 일차적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할 수 없다는 일차적 정보를 전하기도 하지만, 정말 사랑에 흠씬 빠져든 사람이어서, 죽는 한이 있어도 있을 수 없는 이별을 떠올리면서 오늘의 사랑이 주는 행복을 확인하고 반추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문학이 주는 정보는 비밀 정보다.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대개 인간의 본질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을 발견하게 해 주는 기능을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무대는 한 그루의 고목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길,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만이 일관되어 흐르는 단조로운 극의 분위기, 사내아이가 등장해서 고도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목을 매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마지막 대사.
블라디미르 : 내일 목을 매자. (잠시 사이) 고도가 오지 않으면.
에스트라공 : 만일 온다면?
블라디미르 :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사이)……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 음, 가자…….
둘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광대한 혼돈 속에서 명백한 것은 단 하나, 즉 우리들의 고도가 오는 것을 기다린다는 것이다."라고 블라디미르가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그 고도가 오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혀졌는데 죽지 못하고 다시 기다리는 일, 가자고 하면서 가지 않는 행위,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모순을 함의하고 있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빚어내는 모순은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에서도 나타난다.
벙어리긴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아다다도 사랑받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에 자기를 아내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전 남편이 돈이 생기자 모질게 학대하는 것을 체험했었기에, 자기를 사랑해 주는 수롱이와 함께 신미도라는 섬으로 몰래 도망을 하지만, 수롱이의 수중에 돈이 모이자 두려움에 떨게 된다.
결국 아다다는 돈을 강물에 뿌려 버리고 그것을 목격한 수롱은 아다다를 물에 빠뜨려 죽이게 된다.
잘 살고자 하던 아다다의 욕망은 어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문학이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한 것은 결국 인간의 본질이 그러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