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르 쥬네트의 '서술의 경계선'에서
제라르 쥬네트의 '서술의 경계선'에서
사전적 의미
* 서술--(어떤 내용을) 차례를 쫒아 말하거나, 적음.
* 묘사--(보고, 들은 것이나, 마음에 느낀 것을) 그림이나, 소설 따위에서 예술적, 객관적으로 재현함, 그려냄.
플라톤에 의하면 말하는 방식에는 모방 그 자체(미메시스)와 단순한 서술(디에게시스)로 나뉜다고 하였다. 미메시스를 완전한 모방이라고 하였고, 디에게시스를 불완전한 모방이라고 하였다. 완전한 모방이라고 하였을 때는 더 이상 모방이 아니고 사물 그 자체이므로 모방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방이라고 할 때는 궁극적으로는 불완전한 모방(서술)뿐이다. 즉 미메시스라고 하면 디에게시스(서술)을 말하는 것이다.(참고--플라톤 예술론에서 미메시스를 예술의 기본으로 주장하였다.)
서술이란 비언어적 사건을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므로 어떤 사건을 언어적으로 표현할 때는 완전한 모방이란 있을 수가 없다. (리얼리즘의 일사일어 원칙이 있을 수가 없다는 뜻도 된다.)
모든 서술이 한편으로는 사실상 매우 다양한 비율로 내적으로 은밀하게 엮어져 있다 할지라도 행위와 사건들의 표상(상징, 관념)을 포함하여 서술행위 그 자체를 구성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술은 대상이나 인물에 대한 표상(오늘날 묘사라고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쉽게 말씀드리면 서술한다는 것은 서술과 묘사를 모두 포함한다는 뜻)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서술과 묘사는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배웠지만 사실은 서로가 섞여 있어 서로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로서 모든 동사는 이미 묘사적 성격을 갖고 있다. 실제로 묘사도 서술 행위와 관계 없이 자유롭게 존재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서술장르에 속하는 문학의 갈래(소설, 서사시, 동화, 등등)에서는 묘사란 서술의 보조적 역할을 하면서도, 공간적으로는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산문에서는 묘사가 가장 큰 부분이다 라는 말입니다.)따라서 묘사적 장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묘사가 가지는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어느 정도 장식적 기능을 가진다는 것이다. 문장이 심미적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설명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장식적 기능이란 바로 심미적이다.
그러나 사실주의 작가들에 의해서 묘사란 설명의 주요한 요소가 되었고, 이야기의 내용을 상징하는 기법으로 이용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장식적인 기능을 의미심장한 묘사로 대치시키므로 서술의 영역을 강화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서술과 묘사의 차이를 내용의 차이에서 구하고 있다.
서술행위라고 하면 순수하게 과정으로 여겨지는 행위 또는 사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시간적이고, 극적인 모습(스토리=이야기)을 강조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묘사는 시간의 흐름을 멈추어 놓고 공간 속에서만 서술을 펼쳐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묘사는 과정 자체를 광경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표현 방식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서술과 묘사는 언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작업이다. 따라서 서술과 묘사를 구분하기가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