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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문학성

아리솔솔 2010. 1. 28. 15:51

수필의 문학성

 

수필처럼 그 문학적 실체와 특성을 규정하기 힘든 것도 없다. 시나 소설과 같은 다른 장르가 고도의 형식적 구속력을 지닌 반면 수필은 일정한 형식적 제약이 없고 패턴이 없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쓰여진다는 데서 비롯한다.
문학에서 '무형식'(다양한 형식)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바는 간단하지 않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문학의 형식이란 언어, 구성, 리듬, 문체 등 문학적 심미성의 바탕이 되는 본질적 요건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이 비교적 등한시되는 '무형식'이라면 자연히 다른 한 편의 외적 조건이랄 수 있는 사상, 감정, 정서 등의 내용이 강조되고 있다는 말에 된다.
내용은 곧 정보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정보의 범위는 다종다양하고 무한하다. 그러나 정보는 일단 독자에게 전달되면 그것이 지닌 미학적 가치는 일실되고 만다. 말하자면 정보란 일회적인 특성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수필이 주로 정보에 의지하고 있는 문학양식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로부터 야기되는 몇 가지 문제점에 주목하게 된다.  

첫째, 일차적인 정보는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상이 지닌 추상성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다. 문학이 예술의 한 장르로 간주되는 까닭은 아름다움, 즉 심미성을 매개로 해서 우리의 정서적 쾌락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심미성은 감각이 지닌 성질의 한 차원이고 감각은 구체성 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의 문학성은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이나 사상을 어떻게 구체성으로 구제하느냐 하는 문제에 귀결되고 만다.
 철학적인 가치, 즉 사상성에 치우친 수필들을 중수필이라 일컫고 있거니와 이러한 글들이 문학적 성취를 이룰 때까지의 과정은 신중히 판단되어야 할 문제이다.

둘째, 정보는 일차적인 이야깃거리, 즉 素材를 의미하게 되는데 이러한 잡다한 이야깃거리가 어떻게  문학적 변용을 겪느냐 하는 문제다. 흔히 수필을 1인칭 서술의 문학, 혹은 고백의 양식이라 하거니와 이러한 특성은 수필을 단순히 어떤 개인의 사적인 체험담이나 생활주변의 잡다한 단편들을 기록하여 독자의 호기심이나 만족시키는 것으로 자칫 전락시키기 쉽다. 잘못된 수필을 잡문이라고 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이야깃거리, 즉 소재는 무한하고 다양하다. 무턱대고 그 무한한 소재의 새로움과 신기함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호사가의 심심파적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문학적으로는 크게 소용될 것이 못된다. 다양한 소재들이 문학적으로 구제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개성적이고 일관된 관점 아래 그것들이 내적 통일을 이루어야 하고, 그 통일성이 인생과 세계에 대한 어떤 해석을 드러내야만 한다. 그 해석이 온당할 때 우리는 거기에서 보편성을 보는 것이다.
직업과 전공의 다름에 상관없이 수필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이러한 보편성에 이르는 길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는 단순한 정보에 의지하여 하나로 꿰뚫을 수 없는 이야기의 파편들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