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발자취*

『두 갈래의 표현장애』 중에서

아리솔솔 2009. 8. 19. 10:11

『두 갈래의 표현장애』 중에서 -황광수-

 

‘지금의 시’가 젊은 시인들의 시만은 아닐 터인데도 저의 눈길

은 젊은 시인들 쪽으로 쏠렸습니다. 이들의 시집들에는 별다른 공

통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

한다면, 이들의 시는 대체로 언어활용이 자재롭고 서정이 풍부한

데 비해 사회역사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젊

은 나이에 동양의 전통사상을 체화한 듯한 모습들도 꽤 많았습니

다. 이러한 경지가 아무리 오묘하다 해도 자기 몫의 암중모색이

부족하다면 새로운 개성으로 불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

도 들었습니다. 이와 함께, 일상적 체험에서 길어올린 깨달음들도

미래의 빛에 투과되지 않으면 자족적 회로에 갇힐 수밖에 없지 않

을까 하고 걱정도 해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의 지금의 자

리‘에는 시대적 징후가 잘 드러나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 시대의 기계언어들을 참신한 시적 이미지들로 활용하면서 사

이버스페이스를 ‘사막’으로 비유한 경우에도 사회역사적 차원의

해석이 뒷받침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저 자신부터 새로운 문명과 인간 사이에서 작동하는 관계의 메

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터에 이런 불평을 늘어놓

자니 쑥스럽게 느껴지는군요. 그렇지만, 시인은 저보다는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기에, 시인만큼은 새로운 환경과 인간의 존재방

식에 대한 치열한 사유를 견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시인에

에만 버거운 의무를 부여하려는 생각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역사적 질곡이나 새로운 문명세계가 그 나름

의 필연적 발전과정을 거쳐왔다고 할지라도 우리가―특히 시인

이―그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것은 그저

거기에 있는 우연적 소여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부정의 바탕 위에서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를 객관

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시각이야말로 낡은

세계관에 물들지 않은 젊은 시인의 특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시인만큼은 이러한 우연적 소여

라고 여겨왔던 것입니다. ‘우연’만이 새로운 출구를 열어준다는

믿음이 팽배한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이나 굴리고 있는 제가 딱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

가 시를 읽는 수준도 이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2007. 8. 26.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