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는 방법에 대하여/ 이덕무
책을 보는 방법에 대하여/ 이덕무
책을 볼 때는 서문, 범례, 저자, 교정자 그리고 권질卷帙이 얼마만큼이고, 목록이 몇 조목인지를 먼저 살펴서
그 책의 체제를 구별해야지, 대충대충 넘기고서 책을 다 읽었다고 하면 안 된다.
글을 읽을 때는 시간을 배정한 다음 정한 시간을 넘겨가면서 더 읽어도 안 되고 덜 읽어도 안 된다.
나는 어릴 때 하루도 글읽기를 빼먹은 일이 없었다.
아침에 사오십 줄을 배우면 그것을 하루에 오십 번씩 읽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차례로 나누고 한 차례에 열 번씩 읽었다.
몸이 너무 아플 때가 아니고서는 한번도 어기지 않았다.
그렇게 하니까 공부하는 과정이 여유가 있고 정신이 증진 되었다.
그때 읽은 글은 지금도 그 내용이 기억난다. 나는 몸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배우는 양과 읽는 횟수가 매우 적었다.
하지만 재주와 기질이 왕성한 사람들은 그 능력에 따라 과정을 정해 꾸준히 글을 읽는다면 커다란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육서六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육경六經은 당연히 알 수가 없다.
먼저 <설문해지說文解字>를 읽어서 자획. 자의. 자음을 분명히 알고 그 다음에 글을 읽어야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잘못된 습속을 다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 언어나 편지에서 너무 심한 것만 제외하고는 우선 습속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기이한 글자나 옛날 음운을 써서 소통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
의심나는 일이나 의심나는 글자가 있으면, 즉시 유서類書나 자서字書를 자세히 참고하라.
글을 읽을 때는 명물名物이나 글 뜻이 어려운 본문은 그때그때 적어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물어라.
선배인 장학성張學聖과 나의 친척인 복초復初 이광석은 남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책을 읽다가 뜻이 심오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때는 등에서 열이나고 머리가 가렵고 마음이 들뜨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책 읽기를 포기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밤에 책을 읽을 때는 자정을 넘기지 않으며, 독서하다 글의 맛이 없으면
곧 그만두고, 천천히 산보하되 30~40리를 넘지는 않았다.
책을 읽음에 반복해서 많이 읽기만을 탐하는 것이 어찌 지혜로운 것이겠는가? 그렇다고 섭렵해야 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막히고 고루해지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학사學士 하섭 하제천은 책상 위에 오직 한 권의 책만 올려 놓고서 그 책을 끝까지 다 보기 전에는 절대 다른 책을 보지 않았다.
구산 왕형은 책을 읽을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교정을 했고, 수백 권 속에 매우 자세히 적은 본문의 주석이라 해도 한 글자도
소홀하게 넘기지 않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서는 입신立身과 같으니, 당연히 처음과 긑의 순서를 잘 지켜야지 아무렇게나 할 것이 아니다.
지금 선반 위에 있는 몇 권의 책을 대강 훑어보고 곧 싫증이 나서 팽개쳐버린다면 거칠고 엉성해서 앞에서 잊고
뒤에서 잃고 할 것이니 학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곧 이익 없는 물건을 구경하여 뜻을 상하게 할 뿐인 것이다."
사서. 육경과 염락관민의 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농부가 오곡을 가꾸듯이 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경서를 공부할 때마다 반드시 자기의 능력을 다하여 철저히 힘써야만 좋다.
공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첫째, 경문을 충분히 외워야 하고
둘째, 여러 사람의 학설을 다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야 하며
셋째, 깊게 생각해서 의심나는 것을 풀이하되 자신감을 갖지 말고
넷째, 밝게 분별해서 그릇된 것을 버리되 감히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능히 한 경서에서 문호門戶를 찾아 들어간다면 모든 책이 다 같은 방에 있을 것이요, 문호가 다른 책은 유추해서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 학업을 이루어 세상에 이름을 낸 사람은 반드시 이렇게 했을 것이다.
이는 용촌容村 이광지의 독서법이니, 학자가 법으로 삼을 만하다.
석공石公 윈굉도는 어찌 기이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가 '독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책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단정한 차림으로 옛사람을 대하네.
책에 쓰인 건 모두 피와 땀이라
알고 나니 정신을 돕네.
도끼를 들어 주옥을 캐고
그물을 쳐 고운 물고기를 잡는 듯
나도 한 자루 비를 들고
온 땅의 가시를 쓸리라.
이것은 참으로 독서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사소절士小節- -이목구심서-
* 이덕무, <책에 미친 바보>, 미다스북스, 2004, p. 51.